김승옥 소설전집 1 - 생명연습 외 김승옥 소설전집 5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보편과 현실을 동시에 담아내는 것인 진정한 고전이라면 김승옥의 소설은 현대 한국사회의 고전이라 일컬을 만하다. 그의 소설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원동력과 그 구체적 현실을 꿰뚫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의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단연 '무진기행'이다. 그의 소설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진'에 살던 때를 상기시키면서도 다시 일상의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인이 자신의 젊은날 방황과 회의를 현실의 비루한 감정으로 엮어내 하나의 빈틈없는 과거로 남기는 작업이 '무진기행'이라면 김승옥 소설은 이를 가운데 두고 두개의 세계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하나가 소년이 일상인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담은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일상에 대한 연민을 그리고 있다. 전자가 '乾','염소는 힘이 세다','力士'의 세계라면 후자는 '차나 한잔','들놀이','우리들의 낮은 울타리','서울의 달빛 0장'의 세계이다. 즉, 김승옥은 작품을 통해 '도시',혹은 근대의 일상과 마주친 회의적 지성이 어떻게 일상인이 되어가는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무진기행'이 이러한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는데도 김승옥 소설의 핵이 되는 것은 '무진'에서 무기력과 허무가 없었다면 작가에게 창작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바로 '무진'은 일상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회의하는 지성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의하는 지성의 한계로 우리는 김승옥 소설에서 근대적 일상의 비루함에서 벗어나는 희망을 엿볼 수는 없다.

작가 김승옥이 취하는 최대한의 낙관적 제스처란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를 지키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누이를 이해'한다는 거짓된 명분으로 도시에 정착하면서 '힘이 센 염소'를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남들이 다들 가는 '들놀이'에 따라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고, '그와 나'의 관계는 '차나 한잔'하는 시간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들 한때는 '力士'였겠지만 결국 '서울 1964년 겨울'의 일상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게 회의적 지성의 목소리인 것이다.

김승옥 소설의 이런 메세지에 뭔가 해답을 바라던 우리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그 우울함을 치료하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김승옥 소설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폐쇄된 사유의 공간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설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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