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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월
평점 :
1. 따뜻한 쓴소리.
어느새 우리는 경쟁만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라는 경쟁의 시대라는 미명앞에 너무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만약 경쟁에 뒤쳐지면 보통 주변의 반응은 2가지다.
"에잇, 못난 놈. 그냥 나가라~~" 라는 차가운 반응이거나, "에고 안 됐다. 어떡하니,,,"라는 안타까운 반응이다.
하지만 현실속에서 우리가 받는 이러한 양단의 반응은 전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적어도 내 경험상 차갑게 반응하는 전자나. 나를 위해 위로해준다는 후자의 반응이나 모두 자괴감과 무력감만을 느끼게 해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경쟁에 지쳐 혹은 사람에 지쳐 삶에 대한 절박함은 물론 심한 증오감과 품고 있는 가련한 여인(김현진 작가) 앞에 라종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이제 아무 걱정하지마라. 둘째, 나는 네 편이다. 셋째 글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도 된다.(3번 째는 김현진씨가 작가라서 하신 말씀인 듯)"-6p
정말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글이다. 나도 솔직히 지금까지 살면서 부모님 포함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부모님이 내편을 들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자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마도 김현진 작가는 여기서 상당한 위로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김현진 작가처럼 지쳐있던 당신들 역시 위로와 함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매력은 이러한 따뜻함만을 거부한데 있다. 라종일 교수는 현재의 젊은 세대의 어려움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도, 적어도 에덴의 낙원 이후에 자기에게 친절하리라는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p80
라며 일갈한다. 이는 사회 탓, 환경 탓 만을 하면서 현실을 냉철하게 보지 못하고 개인적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경계하기 위한 말씀이라 생각한다. 김현진 작가 역시 크게 공감을 표시하는데,(p 83) 나 역시도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다. 내가 실패했을 때 무조건 나를 비난하는 반응이나 막연하게 안타깝다는 반응에 비교해 본다면, 이러한 일갈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현실을 바로 보게하는 따뜻한 쓴소리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갑작스레 힘든 일에 닥쳐 우왕좌왕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표현이 이 따뜻한 쓴소리다.
2. 지적 교양이 증대되는 즐거움.
책을 읽다보면 글을 나누는 두 분의 문학적 깊이에 대해서 많이 감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역사라는 인문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주된 관심이 정치, 경제, 사회 쪽에 있다보니 문학적 지식은 상당히 얕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이건 뭐지?"라는 머리 속에 물음표가 상당했다. 특히 라종일 교수님은 동서양을 넘나드는 문학적 지성을 뽐내고 있다. 나도 이거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줄 알았지만 내가 모르는 분야의 내용을 알아가는 재미가 솔솔하기도 했다.
또한 라종일 선생님의 경우 이 책에서 개인적 경험을 많이 언급하셨다. 특히나 한국사회의 초 엘리트 길을 걸었던 만큼, 남들이 흔히 겪을 수 없는 외교적 정치적 경험과 관련된 일화들이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라선생님이 영국에서 일했던 시절,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를 만났다는 일화(p110)가 흥미로웠다. 한국사람으로서 이 둘을 만나본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간접적으로 그들을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후 비극에 예고편이라고 해야할까?
책 p174 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라종일 선생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역시 라종일 선생님이 아니면 쉽게 꺼낼 수 없는 정치적이고도 문학적인 경험이 혼재 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계속 한 개인을 구원하는 내용만을 따라가다가 이러한 일화들을 접하는 것은 책 읽기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는 종교적 내용 특히 성경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많다. 아마 라종일 선생님이 천주교도 이시고, 김현진 작가 역시 아버지가 목사 출신이었다는게 성경의 언급이 많은 배경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비기독교적인이다 보니 모르는 표현이 상당히 많았지만, 기독교들한테는 공감도 되고 이해도 되고, 더 배우게 되는 부문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문학적 외교적 정치적 종교적 내용들을 하나하나 접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세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시선은 곧 나의 지적 교양이 조금이나마 올라갔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마 사민주의 좌파를 자처하는 내가 보수에 가까운 라종일 선생님한테 마르크스의 사위 일화를 처음 듣고 알게 된 것도 이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3. 소통
3-1 세대간 소통
이 책의 저자들인 라종일 선생님은 70대이고 김현진 작가는 30대이다. 무려 40년의 세월 차이가 존재한다. 부녀지간의 나이차이라고도 많은 편에 속하고, 조선시대라면 손녀뻘에도 속할 수 있다. 그런 김현진 작가는 일베와 서북청년단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는다.(p193)
이에 라종일 선생님은 마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옛날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 처럼, 과거 서북청년단이 거의 거지꼴을 하고 있었던 불쌍했던 일화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그들은 괴물이 아니었으며, 그들을 괴물로 만든 것은 시대의 산물이고, 그들의 마지막 역시 비참했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작가가 직업인 김현진씨에게 무조건 적인 매도만 할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가지고 그들의 삶을 바라봐 줄 것을 요구한다.(p205) 이는 아마도 김현진이라는 작가가 혐오적 감정에만 빠져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잃을까 우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를 본 김현진 작가는 본인의 생각을 무척 부끄러워 한다. 그러면서 일베나 서북청년단이 타인을 매도한 것 처럼 김현진 작가 자신 역시 그들을 매도하고 있었지 않았던가 하는 반성을 한다.(p210)
내가 이 책을 보면서 가장 기분 좋았던 장면이 이것이다. 서북청년단과 일베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서, 젊은 세대가 원로 세대에게 질문을 하고 그 대답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는 모습을 한국사회에서 과연 볼 수 있었던가? 2012년 대선 이후 계속 지적됐던 문제가 바로 세대간 갈등의 표출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40년 차이의 두 사람이 자신들이 가진 경험을 진솔하게 대화하므로써 소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의 큰 갈등의 요소로 꼽히고 있는 세대간 갈등의 답을 조금이나마 이 장면이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면 내가 오바하는 것일까?(이와 함께 노년층에 대한 김현진 작가의 답답함 토로->라종일 선생님의 대변->김현진 작가의 반성 역시 같은 사례로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40년간의 세대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열린 자세로 서로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화를 끌어나갔던 두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3-2 이념간 소통
(이 파트에서는 내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을 주로 많이 쓰려 하니 양해해 주시길...)
라종일 교수님의 정치적 스탠스는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느낀 건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것이다. 반대로 김현진 작가의 정지척 스탠스는 정반대의 급진적 진보주의자에 가깝다. 그런데 이념적 지형이 기형에 가까운 한국사회를 놓고 봤을 때는 라종일 교수 정도의 합리적 보수주의는 찾기가 어렵다. 김현진 작가는 그야말로 극좌파가 되는 것이고.
사민주의 좌파(중도좌파라고도 할 수 있겠다.)를 자처하는 내 입장에서 정말 좋았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다.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라종일 선생님께서 리영희 선생님이 언급하신 민중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부분이다.(p216) 물론 나도 민중이 중요하다는 거 안다. 역사의 고비마다 그들이 있었고 한국현대사에서도 고비 때 마다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6월항쟁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후 지금까지 민중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물론 노무현 탄핵때와 촛불시위 때 민중들이 뛰어나오긴 했지만, 결국 탄핵이 실패하고, 이명박 정부가 30개월 월령 제한을 만들겠다는 말에 민중들은 스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 쌍차가 폭력진압을 당한 채 2015년 현재 굴뚝에 있고, 콜택노조, sk와 lg 통신사 비정규직 노조 등등이 고공농성을 하고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가 10년간 안 풀리고 세월호와 용산참사가 외면받는 상황에서 그 민중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한진중공업과 씨엔앰 고공농성이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협력 덕에 풀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조건 민중에 의존 한다는 것은 곧 한계가 있다는 것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한국의 민중들은 노동문제에서만큼은 그 한계가 뚜렷한 상황이며, 현재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 부문에서는 리영희 선생보(물론 난 리영희 선생님을 존경한다.)다는 라종일 선생의 의견이 더 맞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개인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긴 했으나 소위 좌파나 진보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라종일 교수가 제시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적 시선을 접하면서 이념적 소통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보는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4. 반론 혹은 비판
100% 완벽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 내용에 대한 반론이나 비판은 당연지사.
(쓰다보니 내용이 무지 길어졌다. 이것도 몇 가지 있지만, 하나씩만 지적하고 끝내겠다.)
라종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지금의 젊은이보다 50-60년대 젊은이들이 힘들었다는 것에는 반론이 있다. 물론 절대적 빈곤의 측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취업난이나 계층 상승과 같은 부분은 과연 그런가? 한 예가 이어령 교수의 사례다. 1956년 기성선배 문인들은 쓰레기라며 문단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당시 이어령의 나이는 고작 만 22이었다. 지금 시대에 이게 가능할까? 한국의 재벌들 50-60년대 역시 20-40대를 지냈는데, 지금 시대에 이게 가능할까? 개인적으로 이러한 반론들은 있다.(기성세대로서의 반성이 없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
5. 마무으리
아무튼 무지하게 글을 길게 썼는데, 다 읽은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다. 원래 말도 많고 글도 긴 스타일이라. 그리고 어차피 개인적인 의견이니 나의 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으실거라 본다.
제목에도 썼지만, 이 책을 보고 리뷰를 쓰는 목적은 볼만한 책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함이다. 특히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뭔가 힘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한 번 보기를 권한다. 물론 100% 정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 이 책에 있는 글들의 시작이 애초 출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극히 개인적인 상황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그렇다.
그래도 한국사회의 초엘리트가 40년이나 어린 사람한테 겸손한 말투와 존댓말로 진지하게 고민을 들어주고자 하는 태도를 보면서, 또한 40년이나 위에 있는 초 엘리트에게 가감없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진지하게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면부터 반성하려는 젊은 작가의 태도를 보면서, 당신 역시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난 해답과 길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어 하고 있는 당신이 이 책의 두 저자의 글들을 보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생각하고, 스스로의 내면의 길을 따라가다보면 혹시 당신이 찾는 길이 조금이나마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