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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일기 -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을 되돌아본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3년 6월
평점 :
도올티비에서 선생님이 제발 사달라고 십분 내내 비시길래 아무리 어려워도 이 정도도 못해드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구매하였습니다.
도올 선생님은 많은 저서를 남기셨지만 이 책은 분명히 다른 작품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우선 몇개월의 짧은 집필기간 동안 며칠 간격으로 그때 그때 펜을 들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내려가신 일기장 같은 형태에 모습을 띄고 있고 이것을 윤대통령의 폭정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식인이 쓴 하나의 난중일기 같은 모습으로 엮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정권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지 않은 부분도 많기 때문에 제목 그대로 일기에 가까운 책입니다.
이 책을 두고 짜임새가 부족하다거나 너무 가볍다거나 하는 비판이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책이 도올 선생님의 저작 중에서 혁신적인 측면을 띄는 부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학자 같았으면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할 고령의 나이에 유튜브에 일주일에 강좌를 두개씩 녹화해서 올리고, 각종 사회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오랫동안 같이 일해온 출판사 통나무와 도올티비의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지원하시면서 집필까지 병행하신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우선 얘기하고 싶습니다. 과연 본인이 강연에서 "일신, 우일신(새롭고 또 새로워진다)"이란 말을 인생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삶에서 그것을 직접 실천하고 증명하고 계십니다. 평생을 구약, 신약, 금강경, 노자, 논어 등등 진중하고 어려운 텍스트를 번역하고 후학들에게 남길 수 있는 순도 높은 퀄리티의 저작을 남기시는데 힘쓰셨던 분이 이런 다소 일회적이고 가벼운 책을 쓰실 줄이야. 그리고 평생 선비의 자세로 사신 분이 어떻게 뜬금없이 유튜브에 책을 들고 나와서 제발 사달라고 십분 동안 떼를 쓸 수가 있을까? 통나무 출판사와 도올티비의 실적이 좋지 않아 자신이 직접 세일즈를 뛰면서 타개해보려 한다고 밝히셨다.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루신 선생님이 대중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와서 책을 파는 모습이 내게는 큰 가르침이 되었다. 위대한 저술을 남긴 학자가 노년에 뜬금없이 가십거리의 책을 쓰려고 하는 명분이 무엇이란 말이냐.
난세일기란 책은 책 자체의 텍스트를 평가 하기보다는 도올이라는 기성학자가 종이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완벽히 넘어온 시대에서 새로운 미디어와 정보전달 체계의 이해를 바탕으로 대중들과의 접점을 모색하고 본인의 글쓰기 방식에도 변화를 주는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서 탄생한 저작으로 이해됨이 마땅하다고 보인다. 항상 스스로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지혜의 첩경이라고 가르치신 선생님! 살아있는 매 순간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야 한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