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린다. 우리의 삶은 기다림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 기다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나는 연극을 많이 보는 사람도 연극에 대해 박식한 사람도 아니다. 지역적인 제약이라든가 내 생활환경으로 인한 제한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그저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기회가 되어 관람을 한 적이 몇번 있었다. 그런 몇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연극을 떠올려보니 생각나는 것은 어두운 소극장과 등받이 없는 불편한 의자 뿐이다. 그 정도이기 때문에 나는 연극을 관람한 경험이 전무(全無)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이 희곡을 나만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컴컴한 소극장에서 공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차분히 읽어나갔다. 솔직히 분량이 적은 탓인지 아주 쉽게 읽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성공적으로 나만의 연극을 마쳤다.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무엇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이거나 삶의 목표들 혹은 그저 막연한 기다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일 수도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이 중요하지는 않다. 본질적인 것은 우리가 그 무엇인가를 항상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이다. 죽음이라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종말'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고도'는 기다림의 대상을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사랑일 수도 희망일 수도 구원자일 수도 있다. 혹은 죽음일 수도 있다. 베케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어제도 오늘도 '고도'를 계속해서 기다린다는 사실이다. 양초가 자신을 태우듯 우리도 우리의 시간을 태우며 소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끝없이 '고도'를 기다린다.'고도를 기다리며'는 그 기다림의 사슬을 끊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다. 그저 우리의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그리스신화의 시시포스(Sisyphos)가 바위를 밀어올리고 또 밀어올리는 영원한 벌을 받고 있듯이 우리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기다림이라는 순환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이 받고 있는 숙명적인 벌(罰)일 수도 있다.반복의 순환이기에 삶은 의미를 잃게 되고 허무해진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관계(關係)를 통해 삶의 허무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서로 상처를 주고 화해를 하며 포옹해준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들간의 소통이다. 그 동안 시간은 종말을 향해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러한 행동들은 삶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위안(慰安)이 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극이 끝날 때까지 대화를 한다. 대화를 통한 소통은 연극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고 시간의 흐름이며 극의 흐름이면서 삶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망각(忘却)이다. 디디와 고고는 바보스럽게도 어제 했던 일들을 잊고, 오늘 또 하고 그리고 다시 잊어버린다. 망각은 이미 했던 행동들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준다. 극중의 주인공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왜 나무 아래에 서있는지조차도 잊어버린다.에스트라공: 그만 가자.블라디미르: 갈 수는 없다.에스트라공: 왜?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에스트라공: 참 그렇지.이런 대화가 작품 중에 반복해서 나타난다. 주인공들은 예전부터 이런 대화를 해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대화를 할 것이다. 주인공들은 계속해서 망각한다. 망각은 삶의 반복을 가능케 해준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진행된다. 그들은 그저 기다릴 뿐이다. 그러기에 망각은 기다림을 가능케 해준다.베케트는 삶을 '기다림'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관계'와 '망각'을 통해 삶이 소진되어 가는 것을 견디며 우리는 기다린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는 삶은 곧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