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아이 힘찬문고 23
손창섭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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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찬수라는 아이가 있다. 제가 먼저 싸움을 걸지 않지만 ‘싸우는 아이’라고 불리는 5학년생. 아버지는 전쟁 통에 납치당해 북으로 가시고, 어머니는 폭격에 돌아가셨다. 그렇게 해서 강찬수는 지금 예순이 넘은 할머니 그리고 누나 찬옥이와 함께 살고 있다. 살림은 할머니가 행상을 해서 간신히 연명해 나가고, 열다섯 나이 누나는 작은 회사에서 잔신부름을 하는 사환으로 일하면서 월급을 만 환씩 받고 있지만, 그나마도 두 달치가 밀려 있고 종국에는 회사가 문을 닫아 집에서 노는 처지가 된다.

 

1950년대 팍팍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이 동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찬수네 식구와 찬수의 싸움으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된다. 이웃에 살던 상진이네가 할머니에게서 내복을 사들이고는 그 삯(1700환)을 내지 않고 버티다가 말도 없이 이사를 가버리던 날, 첫 번째 싸움이 일어났다. 상진이 어머니는 오히려 큰소리를 치면서 할머니를 떠다밀었고, 찬수는 억울하기만 하다. 안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월세까지 밀려 거리에 나앉게 생겼기 때문이다. 찬수는 어린 마음에 상진이에게라도 복수를 하겠다고 벼르다가 양복 값을 치르러 가는 상진에게 으름장을 놓아 외상값 대신 1080환을 받아 챙긴다. 상진이 어머니는 한달음에 교장실에 찾아가 “이 학교에 깡패가 있는 걸 아십니까?”라며 따지고 들면서 찬수를 퇴학시키라고 우긴다. 이렇게 찬수의 담임선생과 상진의 어머니는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이 동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싸움 몇몇을 잘 들여다보면 그 시작이 어른들에게서 비롯되는데, 아이들의 세상은 고스란히 어른들의 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행동에 나서고, 그 싸움은 다시 어른들의 악다구니로 번진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자본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현실, 그 가난과 궁핍이 이웃들의 마음도 강퍅하게 만들었을까. 설사 억울하거나 불쌍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며 동정과 연민의 마음을 품는다 해도, 하루하루 제 살기에도 급급한 그 시절 이웃들은 수동적으로 그저 마음의 응원만 보낼 뿐이다.

 

 

이 사건은 며칠 동안 동네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찬수가 영실이를 몰래 빼내간 것이 잘못이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구네가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모두들 영실이를 불쌍하다고 속으로 깊이 동정하면서도 인구 어머니가 무서워서 도와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191쪽 중에서)

 

그나마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고 이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쪽은 아이들이다. “오늘 선생님이 중학교 갈 사람 또 조사하셨어”라는 찬수의 말에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와 풀 죽은 찬옥 누나를 보자, 찬수는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기로 마음먹고 중학교에 진학할 돈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신문 배달도 하고, 아이스케키 장사도 한다. 또 누나의 일자리를 찾아 백군데도 넘게 돌아다니며 취직 부탁을 하러 다닌다(결국 성공한다). 찬수 친구 광호는 찬수가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함께 패거리가 되어 제 일처럼 나서준다.

 

이야기 후반부에는 이웃집 인구네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영실이라는 아이를 빼내 자유를 찾게 하는 과정이 주요 사건으로 구성된다. 찬수는 돈은커녕 매질과 욕을 견디며 노예처럼 사는 영실이를 그 집에서 벗어나게 해주고만 싶다. 할머니를 통해 찬수는 영실이를 데려가 월급도 주고 일 년에 세 벌씩 옷도 해 입히겠다는 좋은 집에 영실을 보내는 데(인구네서 도망치게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식모살이를 하든, 애를 보는 아이든 사람에겐 다 자유란 게 있단다. 어디서든 있고 싶으면 있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고, 다 본인 마음대로란 말이다. 그 집에선 너무하는구나.”

“그래요, 너무해요. 그러니까 영실이가 불쌍해요. 내가 한 주일도 되기 전에 꼭 데리고 올 거예요.” (본문 152쪽 중에서)

 

책을 읽는 내내 찬수에게 빠져들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엉엉 울며 덤벼들기도 하고, 설움을 당하면 앙갚음을 모색하는 이 아이는 얼마나 당차고 순수한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다른 사람을 보며 연민을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 몸이 상하고 위협을 받더라도 기어코 행동에 나서는 것은 설움과 분노를 겪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계단을 오르듯 강해질 수밖에 없는 찬수의 성장 환경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그 행동들이 부럽기도 하고 슬며시 자랑스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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