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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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아룬다티 로이라는 이름 하나만 믿고 구매한 책이라고 해도 무방하답니다. 2017년 유월, 대학교 도서관에서 <작은 것들의 신>을 빌려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었지요. <작은 것들의 신>을 읽으며 아룬다티 로이는 대단한 작가로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주인공 쌍둥이 에스타와 라헬, 그 쌍둥이의 어머니와 금기된 사랑을 나눈 불가촉천민 벨루타가 무자비한 폭행으로 인해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입술 대신에 발 뒤꿈치나 아니면 다른 성한 신체 부위 어딘가로 에스타와 라헬에게 미소를 지어주었을지 모른다는 묘사가 아직도 마음 한켠에 아릿하게 남아 있어요. 아룬다티 로이의 문체는 잔혹하면서도 아름답고 세심하지요.

 

 사실, <지복의 성자>는 저에게 너무나 어려운 책이었어요. <작은 것들의 신>을 읽을 때에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도 책 속의 갈등 구조와, 사건이 절정을 향해 달음박질치는 선을 더듬지 못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는데, <지복의 성자>는 읽는 내내 작가의 메시지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로 인도와 파키스탄 국가의 분열과 탄생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기도 했어요.

 1947년,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 분할통치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죠. 분할통치로 인하여 인도는 이슬람과 힌두교라는 종교 간의 대립 구도가 서게 됩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무슬림들이 건설한 파키스탄과 힌두교인의 인도로 나뉘게 되는데, 인도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서파키스탄, 동쪽에는 동파키스탄이 형성되었죠. 영국은 각 지역 영주들에게 인도와 파키스탄 중 하나를 택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해요. 그때 서파키스탄과 인접한 카슈미르라는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카슈미르 대다수 주민들이 무슬림이었으나, 그 영주는 힌두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카슈미르는 대다수 주민들이 속한 무슬림인 파키스탄의 것이냐? 영주가 힌두교이니 인도의 것이냐? 이 갈등으로 인하여 영국으로의 독립 직후에 발생한 것이 제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라고 하더군요.

 배경 이해를 위하여 이 정도까지만 정리를 해도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것 같습니다. 지칭하는 말도 굉장히 생소한 데다가 편을 가르는 갈래가 한도 끝도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지복의 성자>에서 카슈미르의 언급이 무척 잦은데 동영상을 찾아보기 전에는 감이 오지 않았어요. 목적과 의미마저 너덜거릴 정도로 인도 내부가 자디잘게 나뉘어지고 있다는 추상적인 짐작에 의지할 뿐이었습니다. <지복의 성자>를 읽으며 알게 된 것인데, 심지어 이슬람 내에서도 시아파와 수니파가 나뉘며, 수니파 내에서도 데오반드인과 바렐비인이 나뉘고, 바렐비 내에서도 탄지흐인지 타프키르인지가 나뉘며 탄지흐에서도 탄지흐 아즈마트인지 탄지흐 파라트인지가 나뉘고 탄지흐 파라트에서도 탄지흐 파라트 자미아 울 울룸 아지메르인지 탄지흐 파라트 자미아 울 누르 메와트인지가 나뉘는 모양이더군요. 이렇게 미친듯이 나뉘는 이권 혹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 확립성을 구하기에는, 이미 스스로가 엉망으로 분해되어 버렸다고 생각들지 않을까요? 마치 여자에도 남자에도 속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자 아무도 아닌 사람인 안줌처럼 말이지요.

 

 아룬다티 로이가 안줌을 히즈라로 설정한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았어요. 이렇게 리뷰를 적어내려가고 있으려니, 안줌의 고통이 곧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열, 혼란과 닮게 느껴집니다. 나는 여자인가요, 남자인가요? 당신은 힌두교입니까, 이슬람입니까? 이슬람이라면 시아파입니까, 수니파입니까? 안줌은 마침내 "엄마"가 됨으로서 그녀의 작은 파라다이스를 사랑과 평화로 가득 채우지요. 인도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하던 "엄마"라는 존재가 된 안줌에게 깃든 것과 같은 평온, 그리고 안줌의 '잔나트 게스트하우스'일지 몰라요. '이것'과 '저것'을 가르고 그 가른 선 너머에서 상대에게 총구를 들이미는 결과로 남는 것은, 결국 허망함과 눈물 뿐이라는 것을 아룬다티 로이는 <지복의 성자>를 통해 호소하는 듯해요. <작은 것들의 신>이 카스트제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지복의 성자>는 훨씬 더 확대된 채인, 깊어진 채인 인도의 문제와 상처에 집중하고, 집요하게 성찰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작가라면 인류의 공생을 위한 더 나은 한 걸음, 선과 덕을 위하여 먼저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고발정신을 가져야 하지요. 아룬다티 로이는 조국애와 휴머니즘을 지닌 '작가다운 작가'로서 소설을 창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분열된 채인 국가라는 것이 사실 마냥 남의 나라 문제만은 아니지요. 부끄럽게도 한 번도 문제의식을 가져본 적 없었는데, 독서를 기회로 삼아 남한과 북한의 전망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됩니다. 갑자기 오에 겐자부로 작가에게 "서사가 많은 나라에 태어난 네가 작가로서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는 황석영 작가의 인터뷰 내용이 떠오르네요. 개인적인 것이든 보편적 문제이든, 상처가 예술의 원천, 영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요. 그 예술이 세상을 조금 더 인도적인 방향으로 이끌 맑은 목소리이길 희망합니다. 또한 작가는 창작자에서 나아가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확신을 심어준 아룬다티 로이의 앞으로의 또다른 작품을 기대합니다. 독자로서,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깨어있는 정신, 인간미를 갖춘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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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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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들은 너무 납작하고 단순해서 진짜 감정의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겨울에는 신기한 눈이 내리고, 겨울나무는 아름답고, 겨울나무는 우아하고, 눈을 맞으면 더 우아해지고, 쨍한 겨울 하늘도 좋다. 입김도, 담요도, 귤도 좋다.

외국에 나가보고 싶다. 내가 전혀 모르는 언어 속에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아기였을 때, 한살 때의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들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그때 내 귀엔 어른들 말이 어떻게 들렸을까? 그때가 기억나면 좋겠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지만 명확하지 않고 느슨하다. 외교관처럼 딱 떨어지는 게 없다. 모르겠다. 그냥 지금이 좋다. 하루하루를 꼭꼭 눌러서 살 수 있는 만큼 다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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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양장)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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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훗날 아주 미미한 존재, 누군가에게 예속된 존재로 살아갈 거라는 뜻이다.

샤흐트는 매우 하얀 얼굴과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졌다. 그들은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영혼의 고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는 가냘픈 몸을 이리저리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것이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는 병약하고 고집스러운 소녀 같다. 그는 잘 토라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그는 버르장머리 없이 자란 계집애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딘가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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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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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 생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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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야 리사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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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땐 알약 이름 같다는 생각을 했고, 책을 읽은 후에는 설치하다라는 뜻이구나~, 했답니다! 토익을 공부하는 지금, 기출문제지에 주구장창 나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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