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여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엘프리데 옐리네크 작가의 <피아노 치는 여자>는 미카엘 하케네 감독의 <피아니스트>로 먼저 접했다. 다소 뒤틀린 사랑과 증오의 형태로 서로에게 얽매어 있는 에리카 코후트 모녀. 편집증적인 어머니의 애정 아래서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에리카는 겉모습만이 성숙한 여인일 뿐 내면은 어린아이의 그것이다. 에리카와 어머니의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들 둘뿐, 두 사람은 다른 누구의 자리도 허용치 않는다.
치밀하고 쌀쌀맞은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피아노 교사 에리카에게 어느 날 다가온 매혹적인 청년 발터 클레머. 그는 빈틈없는 모녀 사이를 파고들고자 애를 쓰며 에리카와 어머니 사이에 균열을 일으킨다. 클레머에게 있어 에리카는 그저 호기심과 놀이와 오기의 대상일 뿐이지만 어머니의 억압 아래서 한 번도 남자라는 존재를 알아본 적 없는 에리카는 그의 거짓된 사랑을 기이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클레머에게 딸 에리카를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보다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고자 발버둥 친다.
문학작품을 영화화 하였을 시, 감독의 역량과 각색의 정도, 배우의 전달력과 호소력에 따라서 작품은 훨씬 빛을 발하게 되거나, 퇴색되기도 한다. <피아노 치는 여자>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피아니스트>는 최대한 원작에 충실한 스토리와 캐릭터 성격에 부합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함으로써 원작에 뒤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피아노 치는 여자>속 주인공 에리카의 묘사는 다소 체격이 있는 완강한 이미지의 여인으로 그려지는데, <피아니스트>속 에리카를 연기하는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깡마른 몸집에 이성적이고 싸늘한 듯하면서도,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소녀의 분위기마저 드러내는 중년 여인으로서 에리카의 고독한 처녀성과 불완전한 내면성에 보다 잘 어울리게 되었다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원작에서 등장하는 에리카의 과거 회상(수영복을 입은 사촌오빠의 사타구니에 얼굴이 눌리면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에리카)이나 에리카에게 거절당하고 화풀이 대상으로 늦은 밤 공원 호수의 백조를 잡아 죽이는 클레머의 모습 등은 각색 과정에서 삭제된 모양으로, 영화 내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파멸로 치달아가면서 산산이 부수어져 버리는 에리카의 외적, 내적 경계막 상태를 속도감을 중시하여 추진력 있게 전달하고자 심리적 측면에 비중을 두는 앞서의 장면들을 과감히 제외시켜버린 것이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다.
200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언어에 폭력을 행사하고 학대를 하는 듯한 충격적인 문체가 특징이다. 그러한 파격적이고 강렬한 묘사를 그대로 시각화하고, 영상미라는 또 다른 형태로 바꾸어 보여준 영화 <피아니스트>는 원작 내 핵심인 고통으로 얼룩진 눈물과 처절한 고함을 죽여 버리는 실수 없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여 주었다는 점에 있어 성공적인 콘텐츠의 재생산이라고 볼 수 있다.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구사하는 문장은 형식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어조 또한 상당히 격정 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의 번역이 까다로운 것은 물론이고 독일 내에서도 읽어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아니스트>역시 다소 난해하고 충격적인 원작을 기반으로 탄생한 영화니만큼 세심한 집중력과 이해력을 요구하고 있으나 텍스트보다는 한 눈에 받아들이기 쉽고 유순한 영상이라는 매체로서 문학 <피아노 치는 여자>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 또한 주고 있다. 콘텐츠의 재생산은 이렇게 상호보완적인 형태로 각자의 역할의 빛을 발하기도 한다

 

 

 학교 과제를 중심으로 작성한 리뷰라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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