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작가님의 <빅토리아의 발레>를 읽었습니다. :) 원래는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을 생각이었는데... <빅토리아의 발레>가 절판된 작품이더라고요.ㅠㅠ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개학하면 학교 도서관에서도 빌려 읽을 수 있으니,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빅토리아의 발레>를 구입해서 우선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랍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정말 책 읽는 속도가 느려요. 집중력도 낮은 편이고요.^^;ㅜㅜ 그런데 이 책은 어찌나 책장이 술술 넘어가던지... 그렇다고 한낱 심심풀이로 치부할 가벼운 작품 정도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었어요. 작가의 기교와 재치가 탁월하기 때문에, 이토록 가독성이 붙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빅토리아의 아버지 관련 등속, 정치적인 이야기도 나오는 편이었는데요.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한 배경지식도 전무하고 이해력도 약해서 그냥 대강 알아듣는 정도로 넘어갔습니다. 국가의 부당한 탄압 아래 민주화는 도래하는가? 하는 문제가 쟁점이었던 것 같아요. 빅토리아의 아버지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고요. 힘없고 외로운 국민들은 무력합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각자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비열한 강자 앞에 대항하는 약자의 위치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씨만은 참 따스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혈기가 왕성하며 쾌활하고 거침없지만, 쉽게 흥분하고 위태로운 구석이 있는 앙헬은 진실한 사랑을 할 줄 알며 속이 깊고 따스한 면모를 보여주어 저를 감동시켰고 얼음같이 매정하고 무심한 아내와 아들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고독한 베르가라 그레이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이 많고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앙헬과 빅토리아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로 비추어졌습니다. 여리고 가냘프지만 발레에 대한 열정만큼은 강렬한 빅토리아의 곧은 자세에서도 많은 연민과 공감을 느꼈답니다. 이 세 사람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조력자들도 여럿 등장하는데, 이러한 인물 설정을 보면서 작가는 인간미가 있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좀 좋지 않은 버릇이 있는데요. 바로 책을 읽기 전에 줄거리 전체를 거의 다 알아버릴 정도로 책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버린다는 것입니다.ㅠㅠ 정작 책을 읽기 시작하면, 자진해서 스토리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독서 내내 “괜히 찾아봤다!”고 후회하면서도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어요.ㅋㅋㅋㅋ 이유인즉슨, 불안하다고 할까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이나 인물 설정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려버리면 그때는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저는 한번 펼친 책은 억지로라도 다 읽어버리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ㅜㅜ) 그전에 저의 취향에 맞는지 어떤지 알아놓자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책의 제목과 표지 그림 정도만 확인하고 펼쳐 읽었던 경험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ㅋㅋㅋ <빅토리아의 발레>도, 읽기 전에 나의 입맛과 완전히 벗어나는 작품이면 어떡하나 불안하여 많은 분들의 서평을 이리저리 다 뒤져보다가 저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결말을 미리 읽어버렸습니다.ㅋㅋㅋㅋㅋ 제 잘못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요. 다 알고 읽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는 뭐야?! (저는 책을 읽다가 놀라면 꼭 크게 소리내어 감정 표현을 한답니다.) 라고 외치지 않았네요. ㅋㅋㅋ 몰랐으면 분명히 크게 혼잣말을 했을 텐데...ㅋㅋㅋ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보다도 빅토리아가 참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 물론 빅토리아에게는 아버지의 죽음,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의 무관심, 발레에 대한 자신의 열정에 비해 너무나도 열악한 경제적 조건 등 많은 상처가 새겨져 있지만... 감수성이 예민하고, 발레를 위해서라면 그 가녀린 몸뚱아리를 무엇에건 온통 던져버릴 수 있을 만큼 열의가 넘치는 빅토리아를 보면서 나는 치열하게 글을 읽고 쓰고 있는가? 씁쓰름한 자문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상황과 서술에 입각한다면 겉모습은 미덥지 못한 망나니의 인상이었을 미소년 앙헬이, 실은 순수하고 올곧은 청년으로, 빅토리아를 정말 사랑해주고 그녀의 꿈을 있는 힘껏 복돋워주고 받쳐준다는 점 역시 저의 부러움을 자극했지요. 꿈과 사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칠레문학은 처음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요, 가장 최근에 스페인문학에 대해서 기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언젠가 칠레문학을 읽었지만 그게 칠레 작가가 쓴 에스파냐어(칠레 언어라고 검색하니까 에스파냐어라고 뜨네요. 그러면 에스파냐어로 쓴 글이겠지요?)로 된 글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냥 해외문학으로 넓게 뭉뚱그려 생각하고 읽었을 겁니다. ㅋㅋㅋ 요즘에야 작가의 출신을 확인하고 어느 나라 문학인지 꼬박꼬박 알아보고 있는데요... <빅토리아의 발레>를 읽으면서 작품 내 언급되어 있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칠레 작가 두 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답니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그 분들을 아주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도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하긴 저도 존경하는 작가가 생기니 쓰는 글에마다 그 작가와 작가의 작품을 언급하게 되기는 하더라고요. 지난 학기 과제물에서 오에 겐자부로 이야기를 끌어온 리포트가 대체 몇 개나 되는지ㅋㅋㅋ 경애심이 가져다주는 정서적 윤택과 고양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괜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작가에게 포근한 친근감을 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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