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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0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헤르만 헤세 작가는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데미안> 좋아하시는 분들 참 많으시죠. :) 저는 안타깝게도 몽매한 인간인지라 헤르만 헤세하고는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ㅠ.ㅠ <데미안>도 읽다가 포기했었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초반에 관뒀었네요...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아무리 그래도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ㅋㅋㅋ 민음사 판으로<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었지요!:> 하... 다행히 그건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ㅋㅋㅋ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그냥 저와 헤르만 헤세는 가치관이 다른 것 같다는 것...^^; 교육제도의 굴레로 희생되는 심약한 영혼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는데, 제가 워낙 규율과 제도의 억압에 대해서 반발심을 느끼지 못하는 우둔한 성격이라 그런가 아주 공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언제나 학교를 좋아했지요... 야간자율학습도 굉장히 좋아했었고요. 그러나 한스 기벤라트라는 섬세하고 예민한 인간상은 매우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민감한 성정을 타고났는데 이리저리 건드려지고 함부로 짓밟혀지니 참 안타깝기는 하더라고요. 서론이 매우 길었는데, 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젊은 사제의 수난 정도로 축약할 수 있을 책 소개란을 읽고는, 한스 기벤라트 같은 캐릭터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모두 읽은 결과, 한스보다는 덜 신경질적이고 좀더 순수하고 앳된 정신력의 소유자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참 좋게 읽었습니다. 재미나게 읽었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읽으면서 뿌듯해지고 풍만해지는 느낌을 만끽하면서 정독했다고나 할까요? :) 미문이 많았기 때문에 옮겨적을 것도 많았고요... 주인공인 젊은 신부는 선의와 애덕에서 우러나는 태도로 은총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적당히 타협할 줄도 모르고 눈치도 없고 오지랖만 넓은 구제불능의 짓거리로 비치는 게 아닌가...ㅋㅋㅋ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ㅜㅜ 아름다운 문장이 소설의 주를 이루고, 그다지 "마구" 격렬한 에피소드는 없었다고 저는 받아들였는데요, 짜증나는 꼬마 세라피타는 제가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고 대충 줄거리만 아는 정도지만 <더 헌트>생각이 미묘하게 나게 만들었고, 샹탈 양은 한 성깔 하는 아가씨라서 마음 속으로 반쯤은 질려하면서 나머지 반쯤은 좀 귀엽게도 생각하면서 바라봤습니다... 제가 매우 좋아하는 책 <소리와 분노>의 퀜틴만큼이나 기가 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ㅋㅋㅋ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의 딸 캐시 생각도 좀 나고...ㅋㅋㅋ 독한 아가씨 캐릭터들을 보면 흥미롭더라고요. 토르시 본당 신부님은 명언을 마구 날려주시는데, 신성하기만 한 게 아니라 좀 유머감각도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ㅋㅋ 그분 때문에 드문드문 자꾸 웃었네요... 개인적으로는, 젊은 신부와 백작 부인의 대화가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어요.ㅜㅜ 아들을 잃은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하느님은 완전히 없어졌다는 독성적 발언을 남발하는 여인을 과연 그 누가 나무랄 권리가 있는가 저는 언제나 맹렬하게 생각합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 캐릭터는 언제 어느 책에 등장해도 저를 지독하게 슬프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백작 부인이 젊은 신부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쪽지의 내용도 어딘가 싸하고 쓸쓸한 느낌이 강력해서 불안불안 했는데... 책에서는 협심증으로 인한 사고사라고 나오지만 저는 자꾸만 자살 쪽으로... 생각이 기울더라고요... 젊은 신부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지만 백작 부인의 격렬한 거부와 모독을 저는 더욱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젊은 신부의 최후도 참 안 됐지요. 질 낮은 식사에, 자꾸만 코나 입에서 피를 쏟는 모습도 불쌍했고, 간간이 서술되는 신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매우 불우하고 외롭게 자라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조그맣고 고독한 소년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아서 과거 회상 장면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네요. 그러한 환경에서 충분히 비뚤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순수하고 반듯하게 잘 자랐는데요. 올리비에 씨와 오토바이를 탄 짤막한 순간, 단 한번의 대화를 나누었던 순간에서만 작중 온전하게 즐거워했던 것 같아서 더 가여웠습니다. 젊은 신부의 마지막 대사는 저에게 허망함과 신성함을 동시에 안겨다주었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제가 그래도 책을 보통 수준 정도는 읽는 편이라고 생각해서 단어... 에 취약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오에 겐자부로 작가나 구병모 작가, 미시마 유키오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는 모르는 한자어가 제법 나와서 국어사전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는 정말 만만치 않던데요.ㅋㅋㅋ 빈한하다, 실총, 흠앙, 운위하다, 위광, 연부, 숙려하다, 열개, 범속하다, 교오, 준열하다, 시성하다, 부복하다, 경질하다, 봉헌하다, 무렴하다...ㅋㅋㅋ 문맥을 살피거나 어감을 어림잡아서 뜻을 예상 정도는 할 수는 있겠는데 정확한 뜻은 이제껏 몰랐고 써 본적도 없던 말이 어찌나 많이 나오던지... 모르겠는 단어를 한 가득 적어놨는데 얼른 국어사전을 뒤져서 뜻을 채워넣어야겠습니다...ㅋㅋㅋ 어쨌든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흡족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