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맛 창비청소년문학 80
누카가 미오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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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저는 벌써 대학교 4학년생임에도, 여전히 고교시절에 머물러 있는듯이, 제가 고등학생 때 너무나 즐겨 읽곤 했던 장르인 청소년 성장 소설을 때때로 찾아다가 접하곤 합니다. 정독 내내 "아, 이젠 정말 성장소설하고는 안녕이야! 충분히 패턴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그것이 다소 유치해..."하면서도 성장소설 특유의 어쩔 수 없는 따스함이 좋아서 얼마 지나면 다시 읽고, 또 읽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예의 메시지가 있지요. 괜찮아! 힘내! 네 곁엔 우리가 있어! 라든지, 울지 않아! 지지 않아! 나, 강하니까! 라든지... 청소년 성장소설이라면 대게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다소 일정한 자세가 있는데요.^^; 고등학생 때도 읽으면서 "아..."하기는 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면서, 좋든 싫든 조금 더 심도있는 작품을 자주 접하게 되고, 다루는 갈등과 세계의 반영수준이나 범위확장 등을 드넓도록 재촉 당하면서 쓸데없이 시건방지고 오만해져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성장소설이 이제는 빤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나도 쓰겠다!' 자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달리기의 맛>은 솔직히 중후반까지 유치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부문 과제 도서로 선정되었다더니, 정말 중고등학생 정도가 읽는 것이 딱 알맞겠다! 하면서 말입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좀더 감명 받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캐릭터들의 기분을 이해하면서도, 그들의 심리 상태에 온전하게 이입하지도 못했답니다. 의아한 생각이 들 때가 많아서, 간간이 책을 덮고 인물들의 마음을 천천히 정리해보기까지 해야 했습니다. 소마는 하루마가 우수한 능력을 드러내보이는 것이 그렇게 마뜩잖은가?-제가 외동이기 때문에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저의 형제자매가, 설령 저와 같은 분야에서라고 해도, 어차피 가족인데 우수한 실력을 발휘한다면 자랑스럽고 뿌듯할 것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어머니께 의견을 여쭤보았더니 '그런 마음이 드는 한편, 그래도 자신이 누구보다 최고이고 싶지 않을까? 아무리 가족이라도!'대답해주셨습니다.-하루마는 제 형을 그렇게 이기고 싶었으면서 형이 자진해서 달리기를 그만둬준다는데 굳이 반감을 느낄 이유가 있을까? 스케가와는 동료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경쟁자가 한 명 줄어든 것인데 쾌재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1위의 여유인가? 만일 소마가 자신의 뒤에서 달리던 이가 아니고 앞에서 달리던 이였다면 스케가와는 또 다른 감정을 가지지 않았을까?

 

누구보다도, 저는 마이에 소마를 안쓰럽게 생각하면서도, 그의 성격 설정 상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흘려버리는 서술에 방심해서, 그의 아픔을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독자인 제가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서술되어 있지 않으면 굳이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니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면의 고백이라고 해 보았자, 조리 실습실에서 미야코에게 털어놓은 한번이 그나마 격앙된 채였던 듯 하고, '그다지 상처받지도 않은 것 같은데!' 툴툴대듯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후반에 다다라서야 소마가 가여워서 어찌나 눈물이 났던지요. 저는 중후반까지만 해도 하코네 경기에 소마도 정식으로 참가하는 마무리가 될 줄로 알았어요. 하지만 마이에 소마는 그저 앞서 가는 이들의 등을 '남아 바라봅니다.' 언젠가, 바람에 녹아들 듯 달리는 과거 아름다웠던 자신이 '안녕', 이제는 정말 안녕이라고 인사하듯 스치고 영영 멀어지지만, 남아 바라보는 소마의 모습 또한 분명히 아름다워요.

 

얼마나 달리고 싶을까요. 세상에는 얼마나 달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까요. 그야말로 경쟁사회죠. 어느 분야에서건 실력 좋고 더 능력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뒤에 남겨두고 휙휙 멀어져 갑니다. <달리기의 맛>은 소재가 아무래도 달리기이다보니, 스쳐지나가는 자들과 따라잡지 못하고 남겨진 자들의, 분야 관계없이 보편적인 현실을 한층 시각화해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사회에는 '스쳐지나가는 자들'보다 '따라잡지 못하고 남겨진 자들'이 훨씬 많이 존재하지요. 하지만 그들이라고, 어떻게 달리기가 간절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달리기의 맛>의 마지막 세 문단에 절절하게 그려져 있는 소마의 모습과 마음이, 작중 내내 미적지근하기만 했던 그의 진실을 맑고 진솔하게 속삭이는 느낌으로 저를 강타해와서, '유치하다!'며 읽어왔던 주제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줄줄 울 수밖에 없었네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마이에 소마들은 떨쳐내고, '잘 할 겁니다.' 세상의 모든 마이에 소마들이 정말로 아름다워요.

 

<달리기의 맛>에서도 일순 언급됩니다만, 달리기뿐만 아니라 각종 모든 분야에서 살아남는 자와 탈락하는 자가 걸러내지지요. 예시로 든 분야에 제가 전공하는 문학도 있더군요. 누군가는 문단 내에서 입지를 굳히고 작가가 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마이에 소마가 독자에게 아프고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캐릭터들보다 '나와 가깝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저도 하루마, 스케가와, 후지미야보다는 소마와 닮아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한 번 달리기를 놓아버렸던 소마가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고, 이후 그렇게나 상처받고 울고 아파했음에도 후회하지 않은 것처럼 저는 어떤 상황이 오든지간에 몇 번이고 글을 선택할 것이고... 글도 저를 선택해준다면 기쁘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글 덕분에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가장 마지막 장(326페이지!) 반 페이지가 저를 많이 울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반복해 이야기하지만 이런 매력 때문에 이제 청소년 성장소설은 졸업! 하면서도 손을 대어 버리게 되는 것이겠지요! 실은 진부한 메시지나 감동이 가장 근본적인 위로를 전해줄 때가 참 많지요. 유치하다는 표현은, 어쩌면 지독하거나 나쁜 표현만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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