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라는 바로 이 책으로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지요. 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치고, 가장 권위 있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려는 시도가 없었다는 사실이 문득 부끄러워졌던 어느 날이었답니다. 일본에, <설국>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 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여기 이 나라는 벌써 두 명이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고도 씁쓰름한 기분이었어요. ;) (10월 5일, 세 명이 된 셈인가요? 일본계 영국 작가더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은 노벨문학상 소감 당시였나, 같은 국적을 지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보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펭귄 클래식 출판사의 <켈트의 여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추천합니다.)에게 영혼의 동질감을 느낀다,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분명히 어디선가 읽었기 때문에, 정확한 문장을 옮기고 싶은데 다시 찾아내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감히 제가 그 말을 빌리자면, 저로서도, 한국의 그 어떤 작가들에게 보다 오에 겐자부로 작가에게 저의 영혼이 깊이 이끌리는 감각을 느낍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세요. 오에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이것이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사소설이 아닌가, 곰곰 생각해보게 될 때가 많지요. 그래서일까요? 오에의 작품 속, 수치와 굴욕을 느끼고, 얼굴이 새빨개지고 식은땀을 흘리고, 해답을 찾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서 움츠러들면서도, 진실하고 참한 영혼의 소유자인, 아마도 오에의 대변인인 인물을 사랑하게 될 때마다 자연히 그 애정이 오에에게 향하게 됩니다. 상상할 줄 알고 반성할 줄 아는 작가! 그가 지닌 인간적인 성품이 글에 진정 녹아들어 있다는 점, 그의 작품이 전형적인 치유 방식이 아닌, 기괴한 듯 따뜻한 듯 그만의 아주 독특한 치유 방식으로 그득 차 있다는 점, 매력의 이유는 여럿 꼽을 수 있지요.

저는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를 2016년 12월 20일 화요일부터 읽기 시작해서 22일 목요일에 완독 하였네요! 일기장을 뒤져보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맘에 들어 옮겨 적어놓은 문장도 몇 보이고요.
'무엇이건, 힘껏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가축들이 그러하듯, 시간 또한 인간의 엄격한 감독 없이는 꿈쩍도 않는다.'
'고개를 떨군 내 이마 아래에서 소녀의 목덜미가 비둘기 등처럼 나긋나긋하게 동그스름해진 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는 '나'와 탈주병이 서로 나누는 위안, 돌아온 마을 사람들의 태도, (마지막 장면)풀숲을 향해 뛰어드는(아마도 부질없이) '나'의 모습 등을 꼽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제9장과 제10장이 가장 소용돌이쳤던 셈입니다. 사실 초반과 초중반은 다루고 있는 소재에 비해서 잔잔하다고 느껴, 시시하다고까지 생각했는데(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감히! 싶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작가를 너무 좋아하게 되어버렸거든요.) 후반부 40페이지가량이 저를 완전히 압도하였지요. 개(레오)가 전염병을 옮긴 것이 아니냐고 소년들이 술렁이기 시작할 때부터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드리운답니다. 동생이 사라지고 소녀가 죽고... 우울의 정점으로 치닫지요. '탈주병과 나'의 모습은 저를 깜짝 놀라게도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렇게 그들을 애잔하고 애틋하게 느끼게 할 수도 없었답니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슬펐습니다. '나'는 붙잡혀서 죽임을 당할 것이 빤했기 때문입니다. 태평양전쟁 말기의 감화원 소년들의 이야기라기에 께름칙한 편견을 떨치기 쉽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초점이 인간의 본성과 이기심을 들춰내는 전쟁의 근본적인 비극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인간이란 게 무엇일까요? 왜 이렇게 나약해야 하며, 어쩌면 이렇게 비굴하고 잔혹해질 수 있을까요? 저도 때로는 제 자신이 인간 따위라는 점이 수치스럽고 안됐답니다. 제가 뭔가 '유리, 혹은 잘 닦인 도자기로 만들어졌거나, 가장 이상적으로는 강철로 만들어진 존재'(엘프리데 옐리네크, <내쫓긴 아이들> p.61)였으면 싶습니다. 강하고 고귀하고 싶어요. '더 청결하고, 더 자부심 강하고, 더 아름다운 존재.'(쓰시마 유코, <웃는 늑대>)

<만엔 원년의 풋볼>의 '옮긴이의 말'에서인가, 오에 겐자부로 작가가 상처받기 쉬운 예민하고 섬세한 소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간혹 그런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영혼과 눈이 늙지 않는 사람들. 오에 겐자부로 작가의 사진을 자주 검색해서 들여다보는데 섬약하고 아름다운 소년이 '회복'을 말하며 고스란히 서 있었습니다. 저도 절대 늙지도 죽지도 않고 싶어요.

오에 겐자부로 작가에 대한 저의 사랑은 지대해서, 지식인에 오에 관련 질문을 올렸었는데 도통 답변이 없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아량을 베풀 의사가 있으신 분들은 도움의 손길을 뻗쳐 주세요.;) 다음이 제가 올렸던 글입니다.
[오에 겐자부로 작가를 정말 존경하는 학생입니다. 언젠가 한국에 오신 적도 있으시죠. 하지만 그때는 제가 오에 겐자부로 작가를 몰랐어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 명단을 훑어보다가 작년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작가의 작품으로는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세븐틴(단편모음집)>, <개인적인 체험>, <히로시마 노트>, <만엔 원년의 풋볼>, <인생의 친척> 정도를 접해보았고 모두 무척 훌륭한 작품들이었지만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와 <인생의 친척>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소설과 에세이를 접할 계획이고요. 혹시 일본에 거주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일본 내에서는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저의 주관적인 견해입니다만, 거장 중의 거장이신데 의외로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신 것 같아서요.

그리고 국내 작가에게라면 편지를 써 보내기가 아무래도 쉽지 않습니까? 문학동네 출판사에서는 작가님께 편지를 전해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여기 한국에서 일본에 계시는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께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겠지요...? 제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닙니다만. 못내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만 치솟아서 여쭤봅니다. 혹시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이시고, 문학에 관심이 많으시고,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혹시 일본 내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도 (문학동네 출판사처럼) 작가님께 편지 전달을 해 줍니까? 혹은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에 대해서 공적으로 알려진 연락망이 존재합니까? 친절한 답변 기대합니다.]

저는 식견이 좁고 그릇이 작은 한없이 모자란 사람이어서 어딘가 멀찍한 곳의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본 적 없지만...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이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분의 소우주를 엿보았으니, 부디 무사히 온갖 장벽을 뛰어넘어서 이 마음이 그분에게 가닿았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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