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컬렉션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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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희 작가는 제가 참 좋아하는 한국작가인데요, 1학년 때인가 2학년 소설 수업시간 때 오정희 작가님의 <저녁의 게임>이라는 단편을 읽고 반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유년의 뜰>도 참 인상깊게 읽었었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유년의 뜰>에, 젊었던 시절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할머니 캐릭터가 등장할 것입니다... 왜인지 그 할머니가 잇몸을 드러내며 웃으면서 강물에서 멱을 감던가 몸을 씻던가, 하여튼 그러던 장면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노랑눈이'가 맞던가요? 위험하고 신비로운 고양이 요괴를 연상시키는 이름 같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노랑눈이는 비대한 소녀로 등장하지요. 마지막 장면에서 노랑눈이가 교장실에서 훔쳐 먹은 케이크를 몽땅 토해내던 모습이 은은한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녁의 게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주인공이 한때 사랑했던 소년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부분인데요. 아슴푸레한 첫사랑의 기억이 전형적인 분홍빛이 아닌 시리고 사늘한 푸른빛을 띨 수도 있는 거구나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항상 말씀드리지만 저는 책에서 중요한 것은 캐릭터의 매력과 문체라고 생각합니다... 에쿠니 가오리(청아한 문체), 와타야 리사(가벼워 보이지만 무게가 있는 발랄한 문체), 미시마 유키오(화려한 문체), 오스카 와일드(화려한 문체), 신경숙(서정적인 문체, 표절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좋아하는 국내 소설가 중 한 분이었습니다.) 등 문체가 탐나는 많은 작가들이 있는데 저에게 있어 오정희 작가도 그 중 한 분입니다.

 소년에게서 마른 꽃잎 냄새가 났다고 서술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소년은 주인공을 푸르스름한 새벽녘에 찾아오지 않던가요? 주인공에게 있어 유일하게 행복했던 찰나의 기억처럼 묘사되는데, 짤막한만큼 안타깝고 애절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더라고요. 소년이 주인공에게 했던 리본이 안 어울려요, 라는 말도 참신한 충격으로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새>에서 역시 오정희 작가님의 문체는 빛이 나더군요. 그리고 예상은 했습니다만, 울적하고 서글픈 분위기의 소설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외로운 곁길의 밑바닥 사람들이지요. 읽는 내내 제 마음마저 고독해져서 조금 힘이 들더라고요. <새>의 주인공, 차가운 소녀 우미가 잠시나마 마음을 열었던 상담 아줌마, 그녀를 향해서 다시 마음을 닫아버리는 장면이 어찌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던지... 우미의 남동생 우일이가 겁많고 소심한 성격에서 반항적으로 뒤틀리는 듯한 낌새를 드러낼 때도 마음이 많이 괴로웠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우일이는 머리가 약간 돌아버린 사람처럼, 정신도 몸도 병을 앓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머리가 커다래 보일 정도로 마르고 가냘픈 소년으로 등장하는 우일이가 저러다 죽어버리기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하면서 읽었습니다.

 

 쓸쓸한 책이었어요.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왜인지 깊은 상실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문장을 좀 옮겨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 한번 생겨난 것은 없어지는 법이 아니라고, 먼 옛날의 별빛을 이제사 우리가 보는 것처럼 모든 있었던 것, 지나간 자취는 아주 훗날에라도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연숙 아줌마는 말했었다.'

 하필 또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던 문장이라서 배로 마음이 음울해졌던...ㅠㅠ; 약간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생각이 나는 것도 같고요. 저는 영화관에서 그 영화를 봤을 때는 솔직히 그냥 그저 그랬거든요. 굉장한 수작은 아닌데 거품 덕이 있는 느낌? 그런데 집에 와서 심심풀이처럼 한 번 두 번 생각해 볼수록 왜 그리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지... 분명히 영화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는데도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거예요.ㅋㅋㅋㅋ 여운이라고 하나요? 우리 모두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존재를 위해서, 설령 그것이 몇 백, 몇 천년 이후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누구일까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일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면서 하염없이 그리워하게 되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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