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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폐범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9
앙드레 지드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은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G시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노트북 밧데리를 안 챙겨가는 바람에...ㅜㅜ 너무나 늦게 리뷰를 쓰게 되었네요! 읽자마자 바로 쓰는 것이 좋은데 안타깝습니다.ㅜㅜ
제가 정말 재미있게 읽은 <위폐범들>! 제 인식 속 앙드레 지드의 글 분위기하고는 조금쯤 상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앙드레 지드가 <위폐범들>을 가리켜 자신이 쓴 유일한 소설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네요. 반항적이고 자존심 강한 베르나르, 예술가의 혼을 지닌 에두아르,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의 올리비에 등 책 속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인물들의 행보를 따라 나아가다 보면 은밀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독자를 홀리게 만드는 "소설"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앙드레 지드의 작품이라면 어릴 적에 어린이를 위한 고전소설 버전으로 <좁은 문>과 <전원교향곡>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두 책 모두 슬픈 결말을 맞이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들이 어린 저에게는 오묘한 비극들로 여겨져서, 앙드레 지드는 별난 사람이구나... 생각했더랬지요. <좁은 문>의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도 불안하게 느껴졌고 <전원교향곡>의 제르트뤼드가 자살을 시도했던 장면도 충격적이었어요. 두 작품에 비하면 <위폐범들>은 재기발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편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그보다는 발칙한 분위기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작중 유약하고 신경질적인 소년 보리스가 권총 자살을 하는 장면은 끔찍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보리스의 죽음은 냉정하고 잔혹한 세 소년의 몰이로 인한 희생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구원'이라든지 '희생'이라든지... 어쩐지 기독교적인(?!)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함께 연상되는 저의 사랑하는 작가 오에 겐자부로 생각을 어김없이 또 했답니다.^^; 소설 속 희생양의 죽음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이라고만 느꼈는데 오에 겐자부로 세계에 빠지면서 취향이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하네요.
보리스의 죽음은 확실히 강렬했지만 비중이 큰 캐릭터는 아닌지라 그의 등장이 잦지는 않습니다. 에두아르가 정말 많이 등장하고, ('에두아르의 일기'가 사건 진행을 꽤 많이 서술하지요.) 베르나르와 올리비에가 적당히 많이 나오는 편이랍니다. 세 인물 중에 저는 특히 올리비에에게 감정 이입을 많이 했어요. 올리비에는 언제나 에두아르의 환심을 얻길 희망하고 자칫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노심초사 합니다.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해서 에두아르를 성가시게 하거나 그에게 미움을 받느니 올리비에는 시종일관 목석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쪽을 택하지요. 에두아르 역시 올리비에를 좋아하지만, 올리비에의 차가운 모습을 오해한 그도 마찬가지로 무뚝뚝한 제스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엇갈리는 두 사람, 올리비에와 에두아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동성애 코드로 해석하는 케이스가 많은 것 같던데 저는 그런 것보다는 호감가는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공감을 깊이 느꼈네요. 글쎄, 제가 올리비에처럼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극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는 성격이라서 유별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애정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수록 뻣뻣하게 굴게 되더라고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순간 상대의 마음속에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나에 대한 호감이 뚝 떨어지면 어쩌나, 내가 지루하고 매력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키거나 다시 한 번 상기시켜버리면 어떻게 하나...' 그리하여 상대에게 품었던 애정을 발각 당하고 무참히 짓밟혀지는 것보다야, 처음부터 아무 관심 없었던 척 냉정을 가장하는 방향을 선택한답니다!ㅋㅋㅋ 이성이든 동성이든,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돼 버리는 것 같아요.ㅋㅋㅋ 언젠가 희곡 교수님께서 '우리는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이 없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서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평소에도 수시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말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서 표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었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늘 제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는 소원해지기 쉽고, 새로운 만남에서 역시 자존심 따위를 앞세우느라고 딱딱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참 어리석고 부족해요.
제가 제목부터 홀딱 반해버리는 책이 꽤 되는데요, <위폐범들>도 그런 책 중 한 권이 되었습니다. 위폐범들, 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나요! 제목부터 위엄과 도발이 느껴집니다.ㅜㅜㅋㅋㅋㅋ 이 멋진 제목이 어떻게 책의 전체 내용을 아우를까 참 궁금했어요. 정말 위폐를 만들어서 사기치는 아이들 이야기도 나오긴 하는데 (앞서 말한 냉정하고 잔혹한 소년 패거리에 주목해 주세요! 올리비에의 동생 조르주는 민감하고 세심한 제 형과 달리 발딱 까졌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성깔있는 놈입니다.ㅋㅋ) 자신의 감정을 위조해서 진심을 숨기는 이들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해석 가능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위폐범들이 정말 많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등장인물들이 문학에 대해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고 자신만의 문학관이 있고 글쓰기를 연구하고 문학 관련 모임을 도모하는 설정이라 좋았네요. 아무래도 제가 책을 좋아하다보니, 소설이나 시를 쓰거나 문학작품을 탐독하는 이들을 만나면 거리감이 급격히 좁혀지면서 행복해져요. 언젠가 문학 코드가 맞아떨어지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네요! 그 전에 제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지만요!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에는, 저는 더 이상 위폐범처럼 굴지 않을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