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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스파이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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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키나와 스파이>​

​이 책은 문학계에서 다뤄진 적 없는 '구메지마 조선인 일가족 참살 사건'을 소설화 한 책이다.
김숨의 작업이 그러하듯이 이 책도 꼼꼼한 답사와 인터뷰를 거쳐서 나오게 됐다.
책의 서술 방식은 전작 『잃어버린 사람』 과 비슷하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오키나와 본섬에서도 멀리 떨어진 '구메지마 섬'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으로 섬에 주둔하는 기무라 총대장의 대원들과 그들의 하수인들 '인간 사냥꾼'들이 섬 주민들을 '잠정적인 스파이'로 규정짓고 그들을 스파이로 몰아 학살한다. 그중에는 이름도 없는 '조선인 고물상'이라는 사람과 그의 아내와 아이들 5명이 포함돼있다. 이미 책표지에서 이들이 죽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책 후반부로 갈수록 '제발 이들이 살았으면'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이 참상이 더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기무라 총대장이 '너는 스파이다'라고 규정하고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피폐해진 주민들 속에 스며든 의심과 소문들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 자신이 먼저 누군가를 '스파이'로 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들이다.

전쟁의 비극 속에 또 하나가 '차별'인데 본토 일본인->오키나와인->조선인 이렇게 차별의 굴레가 형성되어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구메지마 답사에서 '조선인 고물상'의 실존인물 '구중회'씨를 기억하고 있는 우에즈 노리아키 어르신을 인터뷰했는데 어르신은 78년 전 구씨 가족에 대한 기억과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기억도 진심을 다해 이야기해 주셨다고 한다. 오키나와에 조선인 위안부는 천명에 달했고 징용된 조선인이 1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다시 한번 이 헤아릴 수 없는 아픈 숫자에 숙연해진다.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이름 없는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작업을 김숨 작가는 묵묵히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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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콰마린
백가흠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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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잘린 손이 발견되고 그 사건을 강력반 소속 미담반(미스터리사건 전담반)이 맡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때는 베테랑 형사였지만 지금은 그저 퇴직을 앞둔 K 반장, 김세영,차세영, 한채연, 정형배형사가 사건을 쫓는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건에 접근해 나가면서 팀원들의 가족사와 케이반장, 정형사는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경찰들이 만들어낸 조작사건에 가담했던 이력 등이 나오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토막사건이 아닌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와 개인의 사연이 엉켜져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추천사처럼 과거 국가폭력의 피해자와 가족들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가해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도, 반성도 없이 잘 살고 있다. 몇십 년을 억울하게 감옥에 있다가 재심 청구로 무죄를 받은 이들에 대해 당시 형사들의 진심 어린 사과는 끝내 없었다.
국가가 바로 잡지 않은 정의를 개인이 '사적 제재'의 방식으로 행할 때 과연 우리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도 던져준다.

​소설의 첫 문장

​약한 자들이 오래 살며 늙을수록
점점 더 건강하니 어찌 된 일일 가?
-욥기 21장 7절

​소설을 다 읽고 다시 보니
이야기 전체 맥락을 나타내주는 문장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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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플레이 트리플 6
조우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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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의 트리플시리즈는
3편의 단편소설로 만든 소설집으로 얇고 가볍다.

​전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조우리의 소설은 읽기 쉬워서 휘리릭 쉽게 책장을 넘기다가도 다시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언니의 일>

​대뜸 "언니" 하고 걸려온 전화를 받은 은희.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잘못 건 전화를 핑계로 과거 함께 일했던 양다정과 세진.
셋은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다.
'과거 동료였던 여자 셋의 식사'라는 간단한 이야기 속에
정작 본인은 남을 배려한다고 한 행동들이 실은 누군가의 기억 속엔 괴롭힘이 될 수도 있고, 타인을 위한 말이 타인에겐 '악플'일 수도 있다는 간단한 명제를 조우리 만의 화법으로 써 내려간다.

<팀플레이>

​코리아에브리데이 인터넷신문기자 심은주는 말이 기자지 똑같은 문장을 짜집기해 복사, 붙여넣기 수준의 기사를 쓰는 기자다.
어느 날 비디오아티스트 장성수 작가의 비보를 접하면서 자신의 과거의 한 치욕적인 사건을 떠올린다. 유명한 예술가로 알려졌지만 실은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제자들의 창작물을 도용해왔고, 그의 제자였던 한때 연인이었던 지연의 부탁으로 자신이 공모전에 준비한 시나리오까지 의도치 않게 뺏기게 된 과거. 교수의 위력 앞에서 갓 20대의 어린 은주는 무기력하고 억울함만을 느낄 뿐 어떠한 대항도 하지 못한다.

​"정의 같은 걸 믿나 봐요?"본문p64
과거 장성수의 말에
"생각해보니까 너무 억울하더라. 억울해서 죽겠더라."본문 p67
그때는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던 은주는 교수의 과거를 폭로하는 기사를 쓰며 점차 불안이 사라짐을 느낀다.

​소설을 읽는 내내
과거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 기억 속의 '나'와 타인의 기억 속의 '나'는 얼마만큼의 괴리가 있을까?
다정한 척, 관심 있는 척
그 수많은 '척'을 할 때마다 상대는 모두 알아차렸을까 아니면 속아 넘어갔을까.
소설 속 일상적인 대화와 문장 속에서 뒷머리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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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바이브 - 시를 친구 삼아 떠나는 즐겁고 다정한 여행기
김은지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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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랑스러운 시인이라니...
詩에도 '시'자가 있어서일까? 진정한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 내게 시인의
"시를 친구 삼아 떠나는 즐겁고 다정한 여행기"라는 에세이가 나에게 사뿐사뿐 걸어왔다. 김은지 시인의 詩를 모르면 어떤가.. 에세이부터 친해지면 되는 것을.
차례를 보면 서울의 많은 동네들부터 전주, 단양, 문경, 제주, 대구, 전주시의 동네들이 나온다.
시인이 살았던 동네, 시 낭독회나 강연을 위해 다녔던 도시들이 주로 나온다.
읽는 내내 시인의 따뜻한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또 많은 동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이소연 시인이다.
이 두 명의 시인은 낭독회나 강연에 갈 때 서로가 서로의 보조 강사 역할을 해주며 항상 함께 한다.
시인이 얼마나 사랑스럽냐면...
"성수동과는 유튜브 덕분에 친숙해졌다. 길거리 인터뷰를 하는 채널에서 성수동은 힙스터의 동네로 소개됐다. 나도 지나가다 이석훈 씨를 마주치면 인터뷰에 응할 용기가 있을까? 정말 특별한 하루가 되겠지? 편집되지 않을 대답을 해야 할 텐데. 누가 지금 무슨 노래 들어요? 묻는다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 OST를 말하고 싶다...."(본문 p20)​
성수동을 걷다가 이석훈 씨를 만나 인터뷰하는 상상도 재밌지만 좋아하는 노래가 슬램덩크라니.. 내가 이런 상상을 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나도 종로를 걷다가 그때 그 선배를 우연히 만난다면 무슨 인사말을 해야 할까, 알아볼 수는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해봤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여의도동 이야기에서 작가는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서함 00호 무슨무슨 담당자 앞'으로 지치지도 않고 꾸준히 뭔가를 써서 보냈던 덕분에 작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시인은 낭독회, 완독회, 강연 등으로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그 지역의 '독립서점'을 찾아서 꼭 들른다. 작은 책방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놀랐다. 망원동엔 '스캐터북스' , 애월에 '디어마이블루'
공릉동에 '지구불시착', 경춘선 숲길에 '책인감' 등 시인이 너무나 사랑하고 글이 잘 써진다는 책방들이 제각각 다른 특징을 하고 나타난다.

​시인은 산책을 하면서도 '영혼이 자연에 세탁되는 기분'을 느끼고 이소연 시인과 바닷가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는 서로의 詩를 읽어준다. 주변의 괭이갈매기를 보고서는

​"왠지 괭이갈매기가 낭독회에 참석해 준 것 같아 웃음이 터졌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괭이갈매기는 생각보다 크고 아름다웠다. 흰색과 무채색으로 된 매끄러운 몸에 호박색 눈과 부리. 결정적으로 약간 바빠 보이는 표정이 귀여웠다. 내가 조금씩 다가가자 '설마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건가' 하는 기색으로 조금씩 각도를 틀더니 어느 순간 날개를 펴고 모래사장으로 날아가 버렸다." (본문 p125,126)

​시인은 역시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쪽 말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쪽으로.
글을 읽다 보면 시인의 표현이 너무 재밌어서 미소가 지어질 때가 많았다.

​'전시라는 활동은 너무 정적이기에 오히려 인삼이나 고기 같은 것을 먹고서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문 p148)

'누가 나에게 어떤 날씨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비가 온다고 하고선 안 오는 날'이라고 답하고 싶다'(본문 p149)

​이런 표현들이 참 사랑스럽다.
시인이 활동하고 있는 동인 이름은 이름부터도 재밌는 '분리수거'다.
부디 동료들과 시적인 삶을 계속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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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와 제임스 위픽
강화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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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촌구석에서 중, 고등학교까지나와 같은 대학교까지 진학한 용희와 나.
'영희'라는 글램록 밴드를 좋아하는 공통점까지 함께 하는 둘은 서로를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소심하고 용기 없는 '나'에 비해 용희는 서울에서 밴드 공연까지 다녀온 제대로 '제임스'하는 부러운 친구다.
('제임스'는 밴드 노래 제목에서 따온 말로, '영희'의 팬들끼리 서로의 블로그에 팬심을 포스팅하고 공유하는 행위를 '제임스 하다'라는 표현한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영혼까지 하나가 된 듯한 친구가 있었고 또 그 친구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생각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나둘씩 사라져 그저 가끔 함께 좋아했던 노래가 생각나거나 함께했던 장소에 가면 스치듯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으려나' 기억할 뿐이다.

"나는 영희를 제임스 하는 것이 더 좋았다. 함께 누군가를 언니라고 부르고, 그들의 재능을 칭찬하고 감탄하고 사랑하는 것.'영희'의 건너편에 용희와 나, 그러니까 '우리'가 있다고 믿는 것"(본문 p25)

​'이유 없이 서러워지고 삶의 모든 것이 실망스러워지는 순간'
'그래도 살아가야지'(본문 p28)라는 별거 없는 대답에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었던 열아홉, 스므 살의 기억.​

​어렸었다는 핑계로 화해하지 못하고 지나친 무수한 인연들, 풀지 못한 오해들에 대해
강화길 작가는
애도와 후회를 하기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내내 좋아하는 가수의 팬이라서, 좋아하는 작가의 팬이라서 함께 숨넘어가도록 웃고 떠들던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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