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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내 기준으로는 문제작이다. 흥미진진한 모험소설인양 겉모습을 꾸미지만 실제로는 살아있기 때문에 비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이야기를 그 속에 감추고 있으니. 자기전에 조금씩 아껴 읽으면서 기분좋게 자려던 내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새벽 3시가 다와가는데 이 충격과 떨림에 잠을 이룰 수없다. 이렇게 어설픈 활자로나마 엉킨 생각을 풀어내는 밖에.
뭐 얀 마텔의 이 책 끝부분에도 나와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전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후 '객관적' 이란 단어는 거의 허구나 진배없게 되었다. 내 깜냥대로 본 것이 곧 세계 일 수 밖에 없는 이 주관적인 세상에서 내가 이해한 바로,
리차드 파커는 바로 파이 자신이다. 인간성을 벗어버린, 벗어버릴수 밖에 없었던 또다른 파이.
그것이 실존하는 호랑이로서 실제 파이와 함께 227일동안 태평양을 표류했고 마지막에 멕시코의 그늘진 어느 숲으로 사라졌다고 믿는다면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그리고 선택하고 싶진 않겠지만 아마 속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그리고 인간의 추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후자의 이야기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벌어졌던 일이라는 것을.
멕시코에 도착하기전 희망이던 이야기는 몇장을 더 넘긴 뒤 이내 절망으로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해야 하는 것일까. 어제까지는 태평양에서 살아남았지만 이제 파커가 떠난 뒤 인간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내일부터 파이는 살아 갈 수 있을까. 끝없이 깊고 푸르고 불안정한 바다가 아닌, 이 땅위에서 파이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답을 이야기하자면 파이는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안에 나오는 작가와 인터뷰를 할때 그는 호랑이 및 여러 동물들과의 기묘한 구조선 생활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책에서 결코 파이는 두번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일본인의 녹취록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그렇게 견디기 힘든 현실을 치환한 것이겠지. (보르헤스의 <알렙들>이나 G.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 같은 초현실적인 텍스트들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건조하고 힘든, 아주 끔찍한 현실에서 문학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인간의 나약함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책에서 몇 줄을 발췌하여 적어본다.
p.13 작가노트의 마지막 부분 시민들이 예술가들을 후원해주지 않으면, 우리의 상상력은 극악한 현실의 제단에 희생될 것이다. 결국 예술가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고, 쓸모없는 꿈을 꾸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p. 436 "고맙습니다. 신에게도 그러길."
아아, 파이.
나는 이 책에서 살기위한 불굴의 정신이라던가 희망따위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처절함은 절실하게 느껴졌다. 삶이 이다지도 처절하고 처연한 것인데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태평양에서 살아남아야 하지? 무슨 의미가 있지?
-사랑때문에.
ps. 나는 '일러스트' 판으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