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 ㅣ 내 삶에 힘이 되는 Practical Classics 1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깨깨 그림, 이길태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5월
평점 :
어릴 때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하고 빨간 머리 앤의 매력에 빠져서 앤이 길버트랑 결혼한 이야기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앤에 관련된 문구류나 노트, 파우치 등등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살 정도로 앤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1908년생인 빨간 머리 앤의 탄생 100주년 원단도 충동적으로 사서 한 땀 한 땀 손바느질해서 쿠션을 만들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도 앤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지만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다시 책을 읽을 기회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른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빨간 머리 앤 오디오북을 접할 기회가 생겼는데 몇십 년 만에 듣는 앤의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집안일을 하면서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데 아들 둘은 "뭐냐면서?" 질겁을 했지만 차 이동 중에 신랑이랑 같이 들을 때는 옆에서 같이 깔깔거리며 들어주니 어찌나 신나고 더 뿌듯하던지...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매슈 아저씨의 사망 원인도 다 기억하고 있다니...
그러다가 만나게 된 사람과 나무사이 출판사에서 나온 "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은 노란 우비 옷을 입은 단발의 빨간 머리 앤과 앙증맞은 중절모자를 쓴 북극곰 꼬미가 깨깨 작가의 그림으로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온 책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와 그림들 사이사이에 앤과 꼬미가 들려주는 말들 중에서
'온종일 책에 빠져 지내고 싶은 날'은 그동안 바쁘다고 책을 멀리하고 지냈던 몇 달간의 나를 반성하게 해주었으며,
한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바닥을 쳤던 자존감 때문에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는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가까운 누군가에게도 말 못 할 정도였다. '세상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하고 싶은 날'은 꼭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조잘조잘 긍정의 아이콘 빨간 머리 앤과 원작자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 그리고 깨깨 작가님의 손에서 태어난 단발의 빨간 머리 앤과 북극곰 꼬미로 많은 위로를 받았던 시간이었다.
어릴 때 만났던 빨간 머리 앤은 앤과 길버트의 이야기에 설레면서 그런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다이애나와의 우정에 나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서 다시 만난 빨간 머리 앤은 나에게 위로와 자신감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간이 되었다. 매슈의 죽음을 읽을 때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 또한 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많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던 소녀가 어른이 되어 상상도 못할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과 나무 사이 출판사에 너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