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 - 내 발목을 잡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죄책감과 수치심에 맞서는 심리학
셰리 캠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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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어렵지. 오죽하면 천륜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혼자서 온갖 짐을 다 지진 말아요. 하늘도 가끔 실수를 하실 테니까."

_<더 글로리> 중에서

극 중 에덴빌라 할머니(손숙)가 문동은(송혜교)에게 하는 말이다.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 엄마(박지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식의 안전이나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 폭력을 가했던 가해자를 도와 더 큰 가해자가 되고 만다.

동은은 해로운 엄마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거듭 입다가, 결국 엄마를 자신의 삶으로부터 끊어내기로 결정한다.

즉 심한 알코올의존증을 앓고 있던 엄마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시킨다(사실 이건 엄마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못된 엄마라도 핏줄과의 고의적 단절은 쉽지 않았을 터,

엄마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서 문동은은 서럽게 울어낸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장 가슴이 아프고 공감되었는데, 나도 그와 비슷한 부류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에서처럼 극단적으로 나쁜 엄마는 아니었다.

가끔은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물론 엄마의 사랑방식은 그리 건강하지 못했다.

엄마는 평소에 강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의도치 않은 부분에서 쉽게 화를 냈고 엄마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나를 곧잘 이용했다.

또 일이 잘 풀리면 모든 게 엄마 덕분이었고, 또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남 탓이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아빠와 누나는 일찌감치 엄마와 관계를 끊어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산 40여 년간의 세월 동안 20년 정도는 혼자서 엄마를 감당해야 했다.

가끔 아빠와 누나를 만나면 아빠와 누나는 너만 두고 나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사과는 사과일 뿐, 내 절망적인 현실은 바뀐 것이 없었다.

자신을 향한 조금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일절 거부했던 엄마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했고,

점점 내가 삶은 그저 숨이 붙어 있어서 사는 것일 뿐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고민 끝에 올해 초 엄마와의 관계를 끊어내기로 결심했다.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고, 정말 많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으며, 큰 결단을 내릴 동기를 찾아왔다.

엄마와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고, 엄마 또한 알코올의존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엄마를 끊어냈다.

그리고 현재까지 5개월 정도 혼자 살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올라오는 죄책감에 한숨을 내쉴 때가 많다.

가끔 '난 쓰레기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아무리 독하게 마음을 먹었어도 한때 내 세계의 전부였던 '엄마'라는 존재가 내 안에 너무 크게 자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죄책감이 아무리 큰들, 그 전으로 돌아갈 자신은 없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사실 도발적인 제목보다 더 눈에 들어왔던 것은 부제였다.

"내 발목을 잡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죄책감과 수치심에 맞서는 심리학"

현재 내게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이 친구도 썩 건강한 가족에게 자라지 못했다)에게 이런 책이 있다고 얘기했더니,

친구는 "결국 가족과 화해하라는 메시지 아니야?"라고 했다.

물론 당연히 아니다.

이 책은 해로운 가족 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정당방위라고 말하며,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한한다.

이 책의 저자인 세리 캠벨 역시 해로운 가족을 끊어낸 '생존자'이기에,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누구보다 공감을 잘해준다.

우리 누나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해 줄 수 없어."

사실 그동안 살면서 내 처지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절친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나는 경청에서 '이해'보다는 '수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누나와 아빠뿐이었다.

이 책에서도 계속해서 이러한 부분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은 쉽게 이해해줄 수 없다고, 가족을 끊어내기로 결심한 사람은 쉽게 비난받을 거라고. 하지만 그 말에 휘둘리지 말라고.

난 이 말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누군가가 나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마음보다 이 말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내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상처를 아프게 들추는 게 아니라 그 상처를 다독이는 치유로서의 여행이다.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내게 초점을 맞춘 듯했다.

그리고 엄마의 행동이 내 사고방식에 미친 영향, 그동안 한 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영향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감정보다는 남들의 비위에 맞추려는 성향, 내 감정을 돌보기보다는 상대의 감정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 말이다.

(그렇게 길들여지고 그렇게 살아온 나는 현재, 스트레스대응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고갈되어 자율신경실조증을 겪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나의 경험과 당시와 현재의 마음 상태에 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데, 그게 내겐 특히 유용했다.

여타의 자기계발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소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한 질문들이 세심하게 설계된 듯했다.

각 질문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보느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지만,

완독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이 책에서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충분히 생각하고 답해볼 것을 권한다.

나는 이를 통해 그동안 내 머릿속에 묻어두었던 수많은 과거의 일을 직시할 수 있었고,

그동안 원망이나 미움 등의 단면적인 감정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와 가족을 한 인간으로서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해로운 가족 안에서 고통을 겪는 분들, 또 겪었던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가족과 관계를 끊어내라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가족이 당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줄 것이다.

또한 나처럼 엄마와 관계를 끊어내고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고통받는 사람(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도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사는 법, 부정적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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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 그런 나는 없다
홍창성 지음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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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탈을 쓴 철학책.
한여름 노곤할 때 한 장씩 야금야금 읽으며 생각의 틀을 이리저리 바꿔 끼워보는 중.
만화 같은 컬러 일러스트가 무거움을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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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봐라 - 법정 스님의 사유 노트와 미발표 원고
법정 지음, 리경 엮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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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말씀을 다시 접할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네요. 법정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살아가면 그것이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책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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