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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 OWN XXX
Alfie Lee 지음 / Bits / 2021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자만 나오는 페미니즘 레즈비언 만화’, 말만 들어도 웃음이 나오는 소개다. 즐겁게 책을 펼쳤지만 끝은 미묘한 기분으로 덮었다. 만화는 즐거웠다. 다만 느꼈던 조금의 씁쓰레함은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커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들의 연애는 어디서든 쉽지 않다. 헤테로 커플이어도, 레즈비언 커플이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헤테로 커플에 대한 소개는 굳이 하지 않겠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혹은 예상했던 문제들이 불쑥 찾아와 시련을 준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외치고 싶어도 이 난간을 벗어나지 못하면 끝을 맞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허상을 위해 연애를 연기했던 책 속 커플처럼 말이다. (에피소드2 502 Bad gateway) 모든 에피소드가 좋았으나 짧고 강렬했던 저 이야기를 언급하는 건 그만큼 세세하게 기억 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레즈비언? 어렵다. 여자라고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며, 세상의 절반에서 그 절반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 사이 마음 맞는 상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그래서 좋았다. ‘이쪽커플’들의 어려움을 필터링 없이 거친 말투로 내뱉어주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래, 이거라고! 내가 원하는 연애는 한남 섹스도 아니고, 상대방 판타지 채워주는 헤테로식 로맨스도 아냐! 라고 외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이입해 흥미진진하게 대화를 읽어나가는 것이다. 이 모든 걸 떠나서 단순히 책 한 권만 놓고 봤을 때도 만화책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상황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주인공들이 나 빼고 헤어질까 봐. 내가 멍 때리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고백이라도 해 버릴까 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가면서 즐겁게 독서를 끝마쳤다. 모두의 이야기라서 편했고, 그러했기에 즐거움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느낀 씁쓸함을 덮어버릴 만큼 말이다.
만화책의 특성상 책은 빠른 속도로 읽었지만 리뷰를 쓰기까지 꽤 많은 고민이 있었다. 좋은 책은 좋은 말이 따라오는 법인데, 그래서 더욱 평범하게 쓰고 싶었다. 여성 간의 사랑은 특별한 게 아니니까. 마음을 먹고,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며 깨닫는 것이다. 고민할 게 뭐 있나? 이건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혹은 디폴트 커플이 가질 고민에 대해 고심하는 사람이라면 책의 주인공들이 해결책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동질감을 원동력으로 세상에 부딪힐 수 있을 것이다.
옷장 속에 꼭꼭 숨어있을 여성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나와 우리의 시작이 당신의 용기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서평 이벤트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