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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중간 착취 문제를 다룬다. 중간착취는 원청, 용역 업체, 사용자 간의 두 계약의 빈틈에서 발생한다. 원청이 경비 등 특정 업무를 용역업체에 맡길 때 원청과 용역업체가 맺는 ‘도급계약’ 그리고 용역업체가 노동자와 맺는 ‘근로계약’이다.
파견 노동자들은 심지어 법적 해고로 인정되지 않아,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파견이나 도급, 위탁 등의 용역 계약해지는 법적으로 해고에 속하지 않는다. 해고를 제한하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소나 경비 등 하청 노동자들은 아주 쉽게 잘려나간다. 우리 사회가 중간착취의 지옥이 되기까지 작동해온 벽돌처럼 단단한 시스템이다.(p.216)
현재 간접 노동자의 수는 346만 명으로 전 노동자의 17.5%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 파견 노동이 급즙한 데에는 IMF가 기점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노동 현실을 바꾸지 않고 점점 더 심해지는 데에는 팍팍한 한국 노동 현실을 간과하는 사용자들의 탓이 크다고 본다. 파견 노동으로 지탱해온 노동 현실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최근에 읽었던 ‘문밖의 사람들’이라는 르포 만화를 보고 청춘 노동의 열악한 현실과 파견 노동이 관련이 크다고 생각했다.
사용주(원청) - 고용주(용역업체) - 노동자로 구성되는 이 ‘삼각고용’ 구조는 노동자를 ‘동네북’으로 만든다.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떠안는 순간 원청의 불법행위, 용역업체의 방관은 표백되고, 이 간편한 책임 전가는 반복된다.(p.59) 하지만 필자들은 노동자들의 고혈로 굴러가는 간접고용노동 시장의 구조가 지금은 굳은 벽돌처럼 단단해 보일지라도 결국 사상누각일뿐이라고 강조한다.
더군다나 ILO 기준은 “노조와 하청, 파견 노동자의 고용 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 사이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한다”이다. 하지만 원청도 사용자로 확장하는 노조법 개정안은 단골폐기 법안이 된지 오래고, 간접 고용이 늘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원청이 적은 비용으로 노동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 없이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노동부의 입장은 ‘민법상의 도급 계약 등이 형해화되어 민법상 계약에 대한 상당한 제한으로 작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으로 사용자의 논리를 내재화한 시각에 의한 답변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직업소개소에서 일을 구하는 노동자에게는 1퍼센트까지만 수수료를 뗄 수 있도록 법(직업안정법 19조)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거의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파견업체에는 수수료를 규제할 수 없다는 것과 파견법은 중간착취를 합법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규제 역시 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p.267)
한국 사회에서 분노와 불안, 체념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