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서의 이별 -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양수진 지음 / 싱긋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p <자살>

자살이 비극인 이유는 한 생을 마감한다는 의미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충동적인 의사결정일 수도 있고,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자신만의 결단일 수도 있다. 여기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없다. 다만 남겨진 가족의 황혜한 우울을 헤아리기 힘들 뿐이다... 새끼 잃은 어미의 처절한 절규 소리가 지천에 울린다. 장례식장의 온 벽에서 쩌렁쩌렁 튕겨나가 천년 동안 비바람에 갈리고 갈린 날카로운 돌멩이가 되어 심장에 박힌다.


29p <필멸이 필연이라지만>

원치 않아도 모든 생명은 죽음의 우연성이 느닷없이 자신을 범할 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157p <훈계>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듣는 훈계와 질책은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번민이 되지만, 그것을 새기고 받아들이고 반응을 하면 마음속으로 공명을 하게 된다.

187p <완급조절>
삶에도 완급 조절이 필요한 것 같다. 팽이를 돌리기 시작할 땐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러다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회전하게 되면 곁에서 가만히 바라본다. 더 잘 돌라고 팽이를 계속 치면 되레 쓰러지고 만다. 때론 넘어지고 거친 바닥에 갈려 마모될지라도 나만의 중심축을 잡아가는 과정이니 그 흉터조차 아름답지 않겠는가.


214p <부모님의 죽음이란>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뎠거나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들에게 갑작으럽게 닥친 부모님의 죽음이란 청천벽력이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효도하겠다고 마음만 먹었지 아직 해드린 것은 없는데. 왜 부모님은 늘 한없이 베풀기만 하시고 받지는 못하시는지.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기란 참으로 어렵다... 태어나는 것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산다는 것의 소중함은 망각하기 쉽고, 죽을 때에는 고통 속에 떠난다. 바로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에 손이라도 한 번 더 잡고, 한 번 더 안아보고 말해야 한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당신의 자녀로 태어나서 자란 건 행운이었다고.

224p <감나무와 사람>
감은 씨앗을 심으면 처음부터 감나무로 자라는 것이 아니고 먼저 고욤나무로 자라난다. 그 나무가 3년에서 5년이 지났을 때 감나무 가지를 잘라 접을 붙여야 이듬해부터 감이 열린다. 아찬가지로 사람도 태어났다고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칼로 생가지를 째서 접을 붙이는 것 만큼의 고통이 따라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그 고통은 성장통일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배우면서 겪는 아픔일 수도 있다. 

230p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나는 그 마을에서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더욱 행복해진 노인들을 보았다. 죽음 사이에 일상이 끼어드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 죽음이 당연한 듯 머무는 삶. 친구의 장례식이 열리면 모두 함께 추모하고, 한낮에 산책을 하며 봉안당을 한번 둘러보는 삶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을 구분짓지 않고 하나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들의 맑은 미소의 원천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죽음을 애도함과 동시에 그것을 수용하고 상실과 변화를 이해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삶과 행복한 죽음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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