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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평점 :
이 소설에 나오는 상황은 인위적인 클로즈드 서클이다.
자연재해도 없는데 주인공들은 약간의 호기심과 청년 특유의 부주의로 공포의 덩굴이 지배하는 언덕에 갇히게 된다. 자고로 위험을 피하려면 남의 말도 잘 듣고, 주변 상황도 잘 관찰해야 하거늘...
주목할만한 점은 덩굴이라는 식물에 거의 인공지능(!)에 가까운 놀라운 생존본능과,
언덕에 갇힌 여섯 명의 오묘한 조합이다. 미국인 두 커플과, 말이 통하지 않는 그리스인 하나, 말은 통하지만 텐션 자체가 다른 독일인 하나.
빠져나갈 수 없는 언덕에 갇혀, 점차로 기력을 잃어가는 일행들.
먹을 것도, 물도 턱없이 부족하고 구조의 손길이 올지도 불확실하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은 본인의 특성에 따라 행동한다.
자연스럽게 리더 역할을 하는 청년의,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생존을 위한 갖가지 대담한 행동으로 인해 일행은 더더욱 불안해하고, 보는 이들도 섬뜩한 공포를 느낀다.
비참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살인 덩굴의 아름다운 묘사. 꽃과 덩굴이 보여주는 강렬한 색채 대비, 잔인하리만치 세세한 몇몇 묘사들이 뇌리에 남는 작품이다.
<The Road>와 마찬가지로 정말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 얼마나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하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나약하고 허무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