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民國을 꿈꾼 탕평군주
김백철 지음 / 태학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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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어진 

  

탕평군주, 영조는 세간의 편견과 몇 가지가 달랐다.  

 

(1) 이복형 경종과의 사이는 대립적이었는가?  

이 책에서는 영조의 경종 독살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경종이 영조를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아끼던 소론 신료들까지 대거 영조에게 붙여주어서 이들이 탕평파 관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전까지 경종과 영조를 소론과 노론의 대표주자로만 바라보던 시각과 전혀 달랐다. 

 

 

(2) 영조의 탕평은 실패했는가? 

일각에서는 영조의 탕평은 정조의 의리탕평과 다른 세력안배에만 그쳤다고  

평가하면서 실패했다고까지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조때와 영조때의 상황이 전혀 달랐다고 주장한다.  

영조치세에는 소론과 노론이 서로를 원수로 여기던 상황에서  

피의 복수를 주장하고 있어서 붕당의 의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상호간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도 갈라놓아야 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조년간에는 이미 영조가 반백년이 넘게 재위하면서  

상호간 피해의 기억이 무뎌지고 세대교체가 이미 이루어져서  

소론 대 노론의 구도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3) 사도세자는 노론 때문에 죽었는가? 

이 책에서는 이미 영조 중반대 이후  더 이상 노론과 소론의 당론 자체를  

제기하는게 불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사도세자를 보호한 세력과 공격한 세력이 노론과 소론을 막론하고  

심지어 남인까지도 섞여있다고 말한다.  

이는 더 이상 전통적인 당색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 정국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영조 후반대에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이합집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영조는 사도세자를 중심으로 결집과 반대를 하는 세력의 형성 자체를  

아들당과 아버지당으로 구분하면서 양쪽 모두에게 경고메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를 강희제의 두 아들에 대한 처벌과 같은 선상에서 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신선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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