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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미국된다 - 2020년 아시아 경제지도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외 지음, 신무영 옮김 / 따뜻한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만일 당신이 중국에 관해 알고 싶다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 당신은 중국에 업무차 장기출장을 갈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만리장성을 관광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당신은 이전에 중국에 갔던 사람들이 써 둔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한편 당신이 세계경제 연구자라고 가정해보자. 중국 정부의 경제적 결정이 세계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당신은 중국경제에 관해 보다 더 잘 알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당신은 전문적인 경제학 저널지에 실린 중국 관련 학술논문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TV에서 중국경제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중국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었거나 중국에서 장기적인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하자. 이 경우 당신이 중국 여행 에세이만을 읽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목적과 관련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반면 중국 관련 전문 학술저널을 읽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목적과 관련해 알 필요가 없는 사실도 지루하게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책 -중국이 미국 된다- 은 바로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책의 성격은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저자들이 기자들 -이 책은 두 명의 기자에 의해 쓰여 졌는데 이 둘은 서로 부부 사이이다- 이라는 점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저널리즘은 투어리즘과 아카데미즘 어디에도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였다. 매우 흥미롭게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부류의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흥미를 느낄 것이다. 요컨대 중국 북경의 천안문을 여행하기로 한 방문객이나 위안화 평가 문제에 관해 논문을 쓰려는 경제학자들 역시 이 글의 풍부한 인터뷰와 사례들로부터 많은 즐거움과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상하이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업가의 경우, 중국 여행기는 시시하고 중국 관련 경제 논문에는 기가 질리겠지만.
이 책의 제목이 <중국이 미국 된다>라고는 하지만 이 책이 전적으로 중국만을 다룬 책은 아니다. 이 책에는 한 끼에 1인당 10만 엔에 달하는 식사요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불하는 일본 기업가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1997년 IMF 경제위기 가운데에서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감옥으로 가는 한국의 관료 이야기도 나오며, 새로운 현대적 도시를 건설하려다 역시 IMF 경제위기 때 채무를 갚지 못해 도산해 버리는 타일랜드의 모험적 사업가의 이야기, 사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 마귀 때문이라고 생각해 회교신자들을 마녀 사냥하듯 살해하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의 이야기 역시 나온다. 만일 중국이 아시아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면 이 책은 잘못된 제목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이 책은 아시아 전체를 다룬다고 보아야 올바른데 이는 이 책의 원래 제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의 원제는 Thunder from the East; Portrait of a Rising Asia 이다. (이러한 오류는 아마도 최근의 중국 붐에 편승하여 책의 판매부수를 높이려는 출판사의 의지(?)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1997년 아시아를 휩쓸었던 외환 및 채무 위기와 관련된다. 이 시기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미국의 책임이 어디까지인가는 언제나 궁금한 문제였는데 이 책으로부터 인용한 아래 구절은 이와 관련해 우리에게 흥미로운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런 (아시아) 나라들이 기반이 취약해서 외환위기가 초래되었다면, 이들에게 청사진을 제공하는데 일조한 워싱턴도 부분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 . . 상무부 고위관료를 지낸 제프리 가튼은 . . . 이렇게 말했다. “내 서류가방에 금융시장 자유화를 촉구하거나 그것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들어있지 않으면 난 출장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일이 벌어진 뒤 아마도 너무 멀리, 너무 빨리 밀어붙인 것은 아닌가 하고 깨닫는 것은 쉽지요. 지금 뒤돌아 보니 우리는 도가 지나쳤고 또 어느 정도 오만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 . . . . . . 클린턴 정부가 금유시장 자유화를 서두른 것은 월스트리트에게 이익을 주려는 숨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재무부가 선거 자금 기부자들의 요청에 맹목적으로 따랐던 것이 아니고, 명망있는 경제학자들이 자본의 흐름은 자유화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가 클린턴 행정부에 몸담고 있는 많은 경제학자들의 신념에 어떤 식으로든 입김을 불어 넣은 것이 또 하나의 자극제였다(pp. 86-87).
이는 결국 1997년의 아시아 대중들의 고통은 부분적으로나마 미국의 책임에 기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약간의 솔직함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1997년 아시아에서의 경제적 재난의 기본 책임은 어디까지나 개별 아시아 각국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서술된 이야기와 사례가 대단히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과연 전적으로 유익한 가라는 질문에는 “예’라고 흔쾌히 답변하기가 어렵다. 모든 주장이 그러하겠지만 이 글 역시 하나의 특정한 “견해”에 기반하여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1990년대 이후 일본과 1997년 직후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의 불행을 시장의 부족 혹은 결핍(Missing Market)에서 찾는다. 특히 일본을 서술한 부분에서 저자들은 일본경제의 정부개입과 정경유착, 비효율적일 만큼 정에 기초한 고용관계를 통렬히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이 일관적이기 위해서는 시장의 결핍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전후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의 성공 역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후 아시아 경제의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나 제도의 기능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전혀 불가능하다. 도대체 과거 일본 경제의 성공을 설명하면서 MITI의 산업정책이나 고용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어 훌륭한 숙련을 갖추게 된 일본 노동자들, 그리고 장기적 계약관계에 기반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 장기투자에 적합한 금융제도를 빠뜨린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약간의 솔직함과 다소간의 편향된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미덕은 여전하다. (앞서도 강조했지만) 그 미덕이란 개인적 여행기와 학술적 논문 사이에서의 중용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