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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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고민이 된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이 책의 주제인가. 읽고 난 직후, 머리 속이 묘하게 정리가 안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조금 시간이 흐르니 구분하여 정리가 되는 듯 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부분은 중요하다. 무조건 읽고 나야 한다. 그러고 나면, 세상은 규격화 될 수 없고, 거기에 인간은 자연을 이해할 수 없다. 당연히 통제할 수도 없다. 인간이 가지는 그런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우리는 세상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혼돈의 상태에서 삶을 살아라. 이것이 책의 주제다. 작가는 이런 상태에서 오히려 희망을 보고, 가능성을 보고 의미를 찾아낸다.


 책을 읽어 보면, 어째서 혼돈의 상태에 있는 것이, 내가 내 삶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내 삶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지. 작가의 경험을 보면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세상을 내가 온전히 혼자 산다면, 자연마저 없이, 혼자 산다면 통제가 될 지도 모르겠으나, 결코 그럴 수 없다. 작가는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 통제를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져오는 가능성을 말해주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러한 책의 주제는 뚜렷하기보단 모호하게 느껴진다. 애초에 책의 이야기가 인간은 뚜렷하게 규범화 할 수 없다는 것이기에, 주제 마저도 뚜렷하게 규격화가 안되는 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서 느낄 수 있는 주제가 완전히 정반대되게 남을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난 위의 주제에서 가장 강한 공감이 되는 부분은 인정이다.


 인정한다는 것. 요즈음 가장 강하게 느끼는 단어가 바로 인정이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 내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아니라 남도, 너도, 우리는 모두 완벽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을 때,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이 담겨있는 철학적 소설이기에 이방인은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이지만, 난 조금은 독특하게 받아들였었다.

 이방인에서 난 주인공이 부조리한 삶에 대해서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인정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부조리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그제서야 삶의 의미를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소설 내내 감정이 없고,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해오던 그가, 죽음을 앞두고서 부조리한 삶을 부정하지 않게 되자, 그제야 감정이 생기며 폭발하니까. 그제서야 그는 사람이 되었다.


 인정한다.” 난 이걸 크게 생각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류학적으로 어류라는 종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런 것도 모르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수십년을 어류만 찾았다. 그는 현재 알려진 어류의 1/5를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류란 없다. 인간이 직관으로 만들고 구성해온 세상의 구조는 틀렸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을 본능적으로 통제하려 하는 인간의 욕심이 고통스럽게 만들어왔다. 더 나아가 우생학이란 학문을 만들고, 서로를 괴롭히며 소외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 오히려 세상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그게 룰루 밀러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라 생각한다.


 인정하는 것에 대해, 떠오른 책이 하나 더 있다. 테드 창 작가의 소설집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이 책엔 여러 단편 소설이 실려 있고, 그 중에 여러 소설이 사람이 가지는 자유의지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하는 선택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가? 그리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는 자유의지가 없고 너의 선택이 사실 그렇게까지 값어치가 있는 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건가? 난 이야기에서도 인정을 떠올렸었다. “불안은 이런 자유의지의 영역에서 오는 현기증이므로 구원 역시 이 자유를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된다소설의 제목은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에서 왔다고 한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실제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가? 아닌가? 가 아니다. 그저 자각하기만 하면 된다. 인정하면 된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의 발표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고 난 생각해왔다. 그건 진화론이란 독특한 학설의 발표 자체 때문이 아니다. 종의 기원은 인간은 신이 특별하게 창조한 게 아니다라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생명체의 최상위 개체로서 군림하며 신처럼 있던 존재를 한순간에 끌어내려서 원숭이로 만들었다. 이것이 종의 기원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 사상을 뒤엎었기 때문에. 인류가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할 때, 많은 반발을 받은 이유 역시도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별 볼일 없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종의 기원의 마지막 문장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한다.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당시에 신을 없애면서 남긴 다윈의 위로의 말이다. 그리고 룰루 밀러는 마지막에 이르러 다윈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다리는 없다.” 였다고 적었다. 계층의 사다리는 없다. 위도 아래도 없다. 사소하고 하찮아서 무가치한 것도 없다. 인정해라. 인간이, 너가 무언가 보다 위에 있지 않다. 룰루 밀러는 다음같이 인정을 말했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263~4



추가적으로, 이 책은 논픽션이지만, 읽다 보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소설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거기에 책이 주제가 바뀔 정도의 반전도 포함하고 있어서 추리소설인가 싶기도 하다. 만약 어떤 독자가 책을 2/3정도만 읽다가 그만둔다면, 내가 위에서 말한 이야기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거기까지는 아예 다른 주제의식을 가지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간까지만 읽는 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자기자신을 속이는 것. 낙천성의 방패를 앞세워서 자신 기만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다는 일종의 심리학 에세이 거나, 자기 계발서같은 내용으로 받아들일 지도 모른다. 조금 더 읽어나가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우생학을 주장하며 빌런으로 추락하고 문제 인물이 되고, 일견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느낌도 받아서, 사회 고발 책인가 싶기도 하다.

 이야기가 있고, 반전이 있고 그런데 에세이다. 형식이 모호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쉽게 어떤 장르의 책이라고 유형화하기 어려운 책이고, 이런 책의 형식은 책이 하고자 했던 주제의식과 조응하는 면이 있어 거기서 오는 묘한 감상도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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