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세계사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외 지음, 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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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전역과 지구 과거 전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면

"우주의 망대에 올라선 관찰자에게 지구의 역사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오랜만에 읽기 시작한 벽돌책이라 기대를 안고 읽었다. 처음엔 제목대로 '세계사'에 포커스를 두고 읽었는데,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면 흔히 생각하는 세계사와는 조금 다른 논의라는 점을 금방 알 수 있다. 선사시대 빙하기 무렵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봤을 때 '세계사를 이야기하는데 왜 "우주의 망대에 올라선 은하계 관찰자의 시점"이 필요할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조금 읽다보니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하는 세계사가 단순히 정치적/인문역사적인 형태의 역사가 아니라 지구사, 문명사적 이야기임을 알고 납득했다.


빙하시대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기후변화 이야기를 하는 것이 흥미롭다. 우리가 흔히 중학교 무렵에 배우는 선사시대 인류의 생활/사회상을 이야기하면서 당시의 지구 기후와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 다양한 도표와 그래프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책 전체가 올컬러라서, 알록달록한 그래프와 자료를 분석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단순히 지구가 몇 번의 빙하기를 맞이했는지 이야기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질학자 등이 연구한 자료를 보여주면서, '이러저러한 근거를 통해 살펴보면 지구는 몇 번의 빙하기를 거쳤던 것으로 보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역사가들과 과학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구의 과거를 추정하는지 비교적 자세히 소개해주는 부분이 인상깊다.


워낙 두꺼운 책이기도 하고, 호흡이 긴 편이기도 해서 전체를 순서대로 읽지는 않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인류세를 논하는 후반부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인간 문명의 발전을 에너지 소비량 변화로 추적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인류세라는 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왜 홀로세라는 시대 구분보다 더 유용한지를 소개해주는 부분도 재미있는 한편으로, 지구적인 환경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인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바뀌어가는 지구를 다루고 있어서, 모든 시대를 논할 때 에너지와 기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책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근현대 부분으로 가면, 지질학적인 논의와 함께 문명사적인 트렌드와 경향성을 함께 보여준다. (제국주의 챕터에서도 문학/그림 등의 예술 트렌드를 보여주긴 하지만) 이 시대는 특히 대표 학자들의 주장을 시대적 맥락 안에서 재조명하고 분석한다. 아무래도 인류 등장 초기부터 시작하는 책이다 보니 대체적으로 흥미로워하는 근현대의 비중이 전체 책에서 아주 크지는 않다. 하지만 세계정세를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특히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을 시대정신의 대표자로 소개하면서, 정치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예술/문화/사상적 영역까지 전 분야를 망라하는 폭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재미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문제는, 정말로 문명사적인 흐름을 소개하는 책인지라 각각의 사건이나 학자들, 예술작품, 과학적 주장 등을 아주 깊이 있게 소개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즉 각각의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다만 이미 자잘한 사건들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체 사건을 흐름대로 끼워 맞추어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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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은 파일로 밴스의 ‘가상의 호문쿨루스‘처럼 지구 전역과 지구의 과거 전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존재의 관점이다. 지구사 역사가의 문제는 ‘우주의 망대에 올라선 은하계 관찰자에게는 역사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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