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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속으로 - 김사량 작품집
김사량 지음, 오근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김사량의 국내 최초의 소설집인 이 책에 근거하자면, 김사량은 일제 시대에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의 활동 무대가 일본이었던 까닭으로 그는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일본 문단에 글을 발표했다. 그리고 줄곧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던 그는 결국 친일 소설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는 문단에서건 보통 사람들에게서건 잊혀진 지 오래다. 이 작품집은 잊혀진 우리의 소설가 김사량의 면모를 확인시켜 주고, 빛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듯하다.
표제작 [빛속으로]라는 단편을 처음으로 펼쳤을 때, 미지의 소설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긴장이 밀려왔다. 마치 한편의 동화를 보는 듯 소박하지만,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과 깊이가 느껴졌다. 당시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일상과 정서가 피부에 착 달라붙는 듯 느껴졌다.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도 역시 흥미롭고 재치있게 당시를 묘사하고 있다. 일제시대 평양 대동강 주변의 빈민지구인 토성랑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토성랑]은 무척 슬프게 읽혔다. 또 브나르도 운동을 하던 대학생의 시각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조선 땅 곳곳 침투시키려는 일본인들의 정책을 발벗고 나서서 돕는 조선인들의 풍경을 담은 [덤불 헤치기]도, 지식인 사회 혹은 문인 사회의 내면 풍경을 담은 [천마]도 좋다.
특히 천마는 실제로 '김문집'이라는 문인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주인공은 '학문은 그럭저럭 했지만 직업은 주어지지 않고,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거나 다방에 무리져 모여 '진작부터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현재 조선 사회가 낳은 특별한 종족 가운데 하나'이다.
'혼돈으로 가득한 조선이 나 같은 인물을 필요로 하여 만들어 내고, 이제는 역할을 다하자 십자가를 지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자각에 이르자 점점 슬픔이 가슴에 벅차올라 큰 소리로 통곡하고 싶을 정도였다.'라고 심정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는 그나마 선점한 조잡한 지식을 팔아먹을 궁상이나 하거나 애국 운동을 하는 문인들에 주도권을 빼앗긴 것을 시기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속물이다.
그 묘사가 너무나 절묘하고 재치가 넘치지만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었다. 일제 시대의 인물의 내면이 지금 나의 내면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었을까. 자꾸만 가슴 한켠이 콕콕 쑤시는 듯했다. 입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다 자신하지만 그것은 실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면을 지탱하기 위한 은폐가 아닐까. 시대를 현대와 치환한다고 해도 충분히 설득력 있고 공감이 가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