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났을까? - 크세르크세스 vs 레오니다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3
박재영 지음, 조진옥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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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사회 및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주제별로

법정에서 원고, 피고 간의 공방과 변론으로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초등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니 영수에 집중하던 아이들이 암기과목에서 판가름이 나더라고요.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 영어, 수학 점수는 잘 맞아오는데요. 매일 공부하던 습관이 왜 사회, 역사분야에선 그러지 못했는지 소홀했는지 후회가 되더라고요.

아이가 좋아하지 않으니 나중에 다~ 하겠지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학원, 학교, 과제 등에 치이니 정작 암기과목이란 생각에 놓쳤던 역사가 쉽지 않을 수 밖에요.

암기를 하면 어느 정도 좋은 점수를 얻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단시간에 가지긴 힘들더라고요. 초6 남아는 저학년 때부터 꾸준히 역사도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했는데요. 구체적인 유적, 양식 등은 몰라도 한국사와 세계사 연표가 머릿속에 자리잡더라고요. 지금은 예비중학생으로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으로 함께 하는 중인데

중학교역사 배울 때를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왜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났을까?

<프롤로그>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었던 크세르크세스

영화<300>을 보곤 아테네, 스파르타와 같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페르시아 제국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 존재들인지, 페르시아 전쟁의 진실을 꼭 밝혀야겠다며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에게 소송을 걸었네요.



페르시아에 대해 먼저 알아볼까요?

기원전 6세기 중반, 이란 고원에 세워진 나라였어요.

바빌로니아의 국력이 약해져 바빌로니아 신하들의 청을 받아들여 바빌로니아를 정복하면서 페르시아 대제국의 건설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데요.

그 이후로 주위 여러 왕국을 점령해가면서 다리우스 1세 때는 페르세폴리스를 짓고, 각 지역마다 감찰사를 두고,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길도 만들었어요.

서아시아 지역을 통일한 페르시아는 대제국을 형성하고 200여 년이나 유지할 수 있었는데요.

그 이유가 다른 민족에게 관대했고, 종교와문화를 이해하는 관용의 정치를 펼쳤기 때문이예요.


인물이나 연대는 바싹해도.. 건축물이나 미술품 같은 문화재는 잘 모르는 초6 남아예요.

중학생 아이가 역사시험에서 종교부터 문화재까지 달달~ 외우는 것을 보더니 역사시험 100점이 쉬운게 아니구나 깨닫더라고요. 그래두 너는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만 열심히 읽으면 다 된다아~~ ㅎㅎ

어려운 단어도 무척 많이 나오는데 꼼꼼하게 측면에 정리되어 있으니 교과서보다 낫더라고요.

그리스 문명에 대해서도 알아봤어요.

경찰을 뜻하는 police, 그리스의 도시국가의 police

발음은 비슷하지만 철자도 다르고 의미도 다르죠.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에 폴리스라는 작은 도시국가 들이 생기고 신전을 지었으며 민회와 시장 등 시민들의 공공 생활 장소인 아고라가 있었어요.

 

그리스의 폴리스는 정치적 지배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사회로 존재했죠. 8세기 중반부터는 한 세기 이상에 걸쳐 나라 밖 식민지를 건설했어요. 정치적 다툼이 있을 때, 불평을 가진 집단은 국외 식민지를 터나 새로운 땅을 개척했다고 해요.

그리스의 폴리스들 중에 대표적인 아테네, 델피, 스파르파, 코린트 등이 있어요.

폴리스들은 문화적.종교적.언어적으로 공통점을 가졌지만,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이예요.

다른 폴리스에 지지 않고 자기 세력을 넓히려했기 때문에, 전체 그리스를 통일하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인더스 강 유역까지 점령했고, 기원전 513년부터 본격적인 정복전쟁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와 만나게 되었어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동맹은 말만 동맹일 뿐,

흙과 물을 바치라는 뜻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인정하고 복종하겠다는 의미였어요.

아테네 민회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으면서

이오니아의 그리스 인들은

페르시아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불이익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어요.

최초의 동.서 세계의 대결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페르시아 전쟁은 다른 시각에서는 지중해를 둘러싼 전쟁이었어요.

그리스의 지중해 지배권에 페르시아가 도전장을 낸 셈이었죠. 지중해를 지배하는 것은 경제적.군사적.정치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번영과 발전을 보장받는 셈이었어요.

아테네는 군은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파해 폴리스를 지켰어요. 그리스 한 병사가 마라톤평야에서 아테네까지 40km를 달려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승소식을 전하고 숨진 일화는 1896년 근대 올림픽 제1회 대회부터 마라톤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고 해요.

마라톤전투에서 패배 후 10년의 휴전기가 있었고

이 휴전기에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었어요.

아테네를 중심으로 단결하게 된 것이죠.

그리스를 침략한 페르시아를 영화300의 내용을 들어 이야기하는데, 초6남아는 아직 영화를 못 본 상태여서 궁금해하더라고요. 아이가 영화를 보곤 페르시아를 정말 야만과 폭력의 세력으로 기억하게 될까?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을 읽으니 영화를 한번 더 보고싶기도 하고요. ㅋ

역사교과서와는 다르게 양쪽의 입장을

법정 공방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니 역사의 흥미가 저절로 생기게 되더라고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는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역사는 '동양의 전제주의에 대한 그리스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 속에서 페르시아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역사는 바뀔 수 있다는 걸 아이도 세계사법정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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