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집트 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었을까? - 쿠푸 왕 vs 헤로도토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
차영길 지음, 진미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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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라이벌들을 한자리에 모아 재판을 벌이는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세계사를 더 재밌게 접할 순 없을까 고민하다 함께 하고 있는 초등세계사전집이예요. 초등세계사로도 좋지만 중학생 역사를 어려워하는 아이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네요.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왜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었을까?>가 세계사 내용과 겹쳐서 읽고 있길래 저도 같이 읽어보았는데요.

읽다보면 쏙~ 빠져드는 무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이집트하면 생각나는 파라오, 피라미드, 나일강, 클레오파트라 등 어렸을 때 이와 관련한 책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왜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었을까?>에서 법정 공방을 할 일이 있나? 궁금했어요.

쿠푸VS헤로도토스

그들은 누구?



쿠푸는 이집트의 3000년 역사 중 고왕국 시대 제 4왕조 2대 파라오로서, 카이로 남서쪽의 기자 지역에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를 쌓은 것으로 유명한 왕이더라고요.

원고는 헤로도토스

그리스 역사가로 '역사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그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역사>책으로 유명한 인물이예요.

쿠푸는 헤로도토스가 자신을 포악한 왕으로 묘사한데 불만을 품고 그를 법정에 세웠답니다.

 



초등세계사전집 세계사법정을 읽기 전 파라오의 피라미드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이집트사람들은 영원불멸의 내세관을 가지고 있었고 죽은 뒤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어요. 파라오는 죽어서도 저승의 왕인 오시리스 신이 된다고 믿었기에 내세를 위한 집인 피라미드를 크고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이집트 지역에 현존하는 70여 개의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커서 '대피라미드'라고 부리고 있어요. 건축하는데 10만명의 인원으로 약 20년이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쿠푸는 그리스 최초의 역사가이며 헤로도토스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역사서에 기술해 진실을 다시 바로잡길 원하는데요. 헤로도토스는 인정하지 않았어요.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잘못 쓴 것이 사실인지 알아보기에 앞서, 고대 이집트가 어떤 나라였는지 살펴보기로 했죠.

세계 4대강 중에 하나인 나일강은 매년 우기에 나일강이 범람해 나일강 주변이 잠긴다고 해요. 이때 건조한 땅에 있던 소금기가 바다로 흘러나가고 상류에 운반된 흙이 쌓이면서 비옥한 흙이 되어 농사짖기 좋은 땅으로 된다고 해요.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문명이 '나일강의 선물'이란 유명한 말도 본인이 역사서에 쓴 것이라고 강조하는데요.

이집트 인들이 나일강의 변화와 태양의 움짐익을 관찰해 태양력을 만들고, 홍수가 지나간 다음 농토를 정리하면서 토지의 면적 재는 기술, 측량에 관계된 기하학이 발달했어요. 기하학을 geo(토지), metry(측량)는 단어가 합쳐져 geometry라고 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이야기도 잠깐 나오네요.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스승이었던 탈레스의 권유로 이집트로 유학가 23년간 공부를 했었더라고요.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 "다른 지방에서는 보리와 밀이 주식이지만 이집트에서는 그것들을 먹는 것이 창피한 일이다. 그들은 제아(옥수수)라는 곡식을 먹는다. 그들은 그 곡식 가루를 발로 반죽한다. 진흙은 손으로 섞고 똥도 손으로 처리한다"라고 되어 있대요.

표현이 쿠푸쪽에서 이집트를 옥수수만 먹는 나라로 우습게 본다고 화낼만도 하겠더라고요.

당시 그리스에서는 포도주를 주로 마시고고 이집트에서는 보리로 만든 술을 마신다고 하면서 맥주를 질 낮은 술로 평가했다고 하니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이집트에서 왕족과 귀족들이 기원전 30세기 무렵부터 포도주를 만들어마셨는데 그에 대한 부분은 적혀있지 않았거든요.

이집트의 복식문화가 독특하게 다가왔는데 이유가 있더라고요. 검은 가발을 쓴건 강 유역의 뜨거운 햇볕으로 부터 머리를 보호하고, 여성들의 눈 화장을 검게 한 것은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어요.

야구선수들이 눈밑에 검은색 테이프를 붙이는 것과 같아요.

고대국가 중 이집트는 남녀차별이 없는 나라에 속하더라고요. 여성도 재산과 하인을 소유할수 있는데다 여성의 친형제나 남편이 아내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었어요. 다른 왕국에선 볼 수 없는 많은 부부조각상이 그 증거의 일부가 되고 있어요. 게다가 그 시대 크레오파트라, 하트셉수트 여왕이 있었으니 고대 이집트는 꽤나 남녀평등면에서 앞서 나갔어요.

이집트 인들은 대관식을 거쳐 파라오가 되면 신의 기를 얻어 신에 가까운 존재, 반신으로 거듭난다고 생각했어요. 신과 인간이 교류할 수 있는 통로였던 셈이죠.

사망 후에는 죽음의 신 오시리스 곁으로 가서 완전한 신이 된다고 믿어 엄격한 절차에 따라 미라로 만들었고, 피라미드처럼 하늘에 연결된 듯한 무덤을 건설한 것이고요.




1000년 이상 계속된 이집트 문명 시기에 30개 왕조가 있었는데 그 왕조를 고왕국.중황국.신왕국으로 구분하고 있어요. 고왕국의 제3왕조 조세르는 선왕들의 무덤이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안타까워 피라미트 식 무덤을 처음 설계했다고 해요. 계단식 피라미드는 초기 이집트 왕이나 귀족의 무덤인 마스타바를 여러 층으로 쌓은 형태였어요.

커다란 바위에 홈을 파 나무를 박아 놓고, 물을 부어 나무가 팽창하도록해 돌을 잘랐다고 무척 지혜로운 이집트인들을 알 수 있겠더라고요.

초등세계사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김딴지 변호사와 이대로 변호사의 말말~!

과거 인류의 위대함을 알수 있는 훌륭한 건축물이 남아 있으니 역사적인 일에는 때론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김딴지 변호사와 목적을 위해서든 누구를 위해서든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는 안되기에 피라미드를 짓지 않고 생명을 지키는 편이 낫다는 이대로변호사의 말을 듣곤 한참 생각에 잠겼었어요.

미라를 만드는 법에는 3가지가 있는데 비용이 가장 많이 들면서 가장 오래 미라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쇠꼬챙이를 콧속에 넣어 뇌를 긁어내고, 옆구리를 약간 가르고 속에 손을 넣어 내장을 제거해요.

제거한 자리를 야자술로 잘 씻고, 비운 속에 여러 향료와 방부제, 나무진을 채운 후 소금물이나 소다수에 70일 정도 담그고 나서 붕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메는 방법이예요.

두번째는 뇌나 내장을 빼지 않고 '시더'라는 기름으로 녹인 후 첫번째 방법처럼 소다수나 식초에 담가 두었다가 붕대로 싸매면 방식이예요. 세번째는 아무 처리도 하지 않고 70여 일 동안 소다수에 담가 두었다가 붕대로 싸매서 미라를 만드는 방법이 있어요.

왕조가 기울어가면서 거의 모든 파라오 무덤이 도굴되었는데 1922년 발견된 제18완종 12대왕 소년왕 투탕카멘의 무덤은 유일하게 고대 이집트 사회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어요. 이집트 수천 년의 역사는 도굴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란 표현에선 안타깝더라고요.

이집트를 여행하고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여행기를 쓴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사제들이 말하기를, 스네프루가 죽을 때까지 이집트는 훌륭하게 통치되고 대단히 번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쿠푸는 온갖 사악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신전들을 폐쇄하고 이집트인들이 제물을 바치는 것을 금지하고, 오직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강요했다"라고 표현되어 있어서 쿠푸가 시시비비를 따지고자 법정 공방을 펼쳤네요.

사제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쓴 것이라는 헤로도토스는 엄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쿠푸 원고쪽에선 채석장의 낙서나 나일강 범람기에 농사일을 할 수 없는 노동자를 피라미드 건설에 종사하게 함으로 일종의 실업대책이었다고 항변하고 있어요.

초등세계사전집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을 읽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역사의 재미를 알게 되었어요.

역사가는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역사서를 기록해야 하는데 헤로도토스는 그 기본을 망각하고, 이집트에 대해 주위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인냥 기술했다고 주장하네요. 역사가 또한 사람인지라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면 역사란 다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더라고요.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당시 이집트어를 몰랐고, 이집트에 살고 있던 그리스 상인이나 용병들의 증언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하니.. 기록의 역사가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나 헤로도토스와 그의 저서 <역사>는 후대 역사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네요.

지나온 자리는 역사로 남기 마련이고 정설로 전해지던 역사도 다시 늘 돌아봐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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