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를 넘었을까? - 한니발 vs 스키피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2
박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6 남아에게 원고와 피고라는 단어는 어색할 수 밖에 없는데요.

"엄마, 원고가 피해자에요? 가해자예요?"

물으면서 읽어나가기 시작했던거 같아요

역사도서를 좋아하다보니 색다른 원고, 피고, 다채로운 증인들이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법정공방이 줄글식의 역사서보다 아이 나름대로의 주체적인 세계관을 길러주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어요.

 

초6 남아가 묻더라고요.

알프스산맥을 넘은 역사인물 2명은 누구?

응??

살짝 당황했지만

눈치코치로 아들 옆에서 주어듣다보니 대답은 하게 되네요. ㅋㅋ

한니발과 나폴레옹!

근데 한니발은 누구일까 궁금했어요.

왜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까

로마의 역사부터 알아볼까요?

기원전 753년 로마의 건국, 기원전 509년 공화정의 시작,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카이사르의 증장과 옥타비아누스에 의한 제정의 시작, 5현제의 시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1천 년간 이어진 동로마 제국 등.. 2천 년 동안의 로마사 중에서

이 책은 로마의 운명이 걸렸던 포에니 전쟁을 다루고 있어요.

포에니 전쟁이란 당시 강력한 함대를 보유하며 지중해를 지배했던 해상 제국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던 로마가 국가의 운명을 걸고 치른 약 120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말해요.

 

역사는 이긴자의 것인가요?

전쟁은 결국 로마의 승리로 끝나고, 이후 로마는 지중해 일대를 손에 쥐게 되죠.

때문에 카르타고의 역사와 한니발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세계사법정 역사공화국은

역사의 승자인 로마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으로 균형있는 세계관을 가질 수 있었어요.

제1차 포에니 전쟁, 제 2차 포에니 전쟁, 제 3차 포에니 전쟁과 이 이후로 나뉘어져 3일동안의 흥미진진한 재판 속으로 들어가보았어요.

원고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포에니 전쟁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로마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어요. 코끼리를 몰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쳐들어간 사건은 가장 유명해요. 그는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지지만 않았으면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 유명한 인물이 되었을거라 주장하고 있네요.

피고는 스피키오.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물리친 후 로마시민들로부터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의 정복자)'라는 칭호를 얻었답니다.

원고측은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명분하에 피고측은 기존의 역사적 평가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역사적 진실은 쉽게 변화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초6 남아의 생각이 궁금하더라고요.

한니발과 단 한 차례의 전투에서 이긴 스피키오, 16년동안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한니발은 억울한가봐요. 로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스피키오와 전쟁 내내 카르타고 지원없이 홀로 싸웠지만 로마의 역사가들은 한니발을 침략자로 몰아세웠거든요.

포에니전쟁은 120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실제 양국간의 전쟁 기간은 41년 정도라고 해요. 왜 전쟁을 치렀던걸까 궁금해졌어요.

카르타고는 기원전914경에 건국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에 살던 페니키아인이 오랜 옛날부터 발달된 항해술을 이용해 멀리 지중해까지 교역을 넓혀가다 지금의 북아프리카에 세운 식민도시예요.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시칠리아 전체를 얻기 위해 로마와 부딪힐 수 밖에 없었어요.

원고측은 로마가 카르타고의 지배 아래 있던 시칠리아를 빼앗으려고 한 시점부터 라고 이야기하고

피고측은 카르타고와의 조약 때문에 로마는 지중해 서쪽 지역과의 통상이 금지되어 불공정한 조약에 더불어 카르타고가 지중해 전역을 장학하기 위해 시칠리아를 침략해서라고 하네요.

결국.. 똑같음!!!

1차 포에니전쟁에서

해상전쟁에서 약할거라 생각했던 로마가 '코르부스'라는 신무기로 해상 전투에서 승리해 북아프리카대륙으로 직접 쳐들어왔어요. 다급해진 카르타고는 군대를 재정비하고, 코끼리 부대를 약성하고, 누미디아의 날래고 용맹한 기병을 고용했어요.

하지만 해상전에서 배 114척을 잃고 로마에 패배했어요. 로마해군도 태풍을 만나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요.

피고측, 원고측 증인들이 당시에 역사의 현장을 서로의 입장에서 대변하다보니 더 생생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23년동안 계속된 전쟁 기간 동안 로마와 카르타고 모두 엄청한 국력을 소모하고 난 뒤 강화를 체결하게 되었어요.

로마는 시칠리아는 전체는 로마의 영토임, 포로는 몸값 없이 석방하고 전쟁배상금으로 3천 2백 탈렌트를 지불하라는 조건이었죠.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이 에스파냐 동해안에 있는 사쿤토를 공격하면서 부터였어요. 당시 사쿤토는 로마와 동맹을 맺고 있었고 로마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로마는 한니발을 만나 사쿤토에 대한 공격을 멈추라고 요청했지만 한니발 군대는 사쿤토를 함락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삼았어요.

원고측은 로마의 영토를 공격한 것이 아니기에 로마와 체결한 협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인데요.

로마는 동맹국의 도와줄 의무도 있기에 사쿤토를 공격한 것은 로마를 공격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한니발장군은 29세 나이로 10만여 명의 대군과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해상이 아닌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공격했어요. 험난한 길로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하는데 넉 달이 걸렸지만 한니발의 완벽한 승리를 가져왔죠.

칸나전투에서는 7만 명의 로마군이 한니발이 지휘하는 4만 명의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로마의 집정관 아이밀리우스가 전사하고, 기병이나 보병으로 참전한 로마 원로원 의원 80명도 모두 전사했어요.

한니발은 로마의 동맹국을 포섭하기 위해 동맹국 병사들을 풀어주었고 처음에는 몇몇 동맹국들이 로마를 버리고 한니발의 편에 섰어요.

로마는 튼튼한 방어체계를 가진 거대한 도시였기에 공격한다해도 족히 2,3년이 걸린다고 생각했어요.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있는 로마의 동맹도시를 압박하는 쪽을 선택했고, 로마는 정면승부를 피하고 시간끌기 전략으로 한니발을 이탈리아 반도에 가둬놓는 전술을 펼쳤어요. 4년 동안 소득없는 전쟁을 벌였지요.

 

기원전 202년 로마와 카르타고는 나라의 운명을 건 결전을 준비했어요. 한니발은 강화를 제의했지만, 스피키오는 거절했어요. 로마는 나팔을 불고 꽹과리를 쳐서 코끼리부대를 무력화시키고 카르타고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전쟁에서 승리했어요.

로마는 카르타고에 제시했던 강화 주요 내용이예요.

첫째, 로마는 카르타고를 독립된 동맹국으로 간주하고 카르타고 자치권을 인정한다. 둘째, 카르타고는 해외 영토를 모두 포기한다. 셋째, 카르타고는 앞으로 로마와 동맹 관계에 있는 국가와 싸우지 않는다. 넷째, 3단층 갤리선 10척을 제외한 모든 함대와 군용 코끼리를 로마에 넘겨준다. 다섯째, 카르카고는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어디서든 로마의 허락없이 전쟁을 할 수 없다. 여섯째, 카르타고는 전쟁 배상금 1만 탈렌트를 앞으로 50년 동안 나눠 로마에 지불한다. 일곱째, 카르타고의 젊은이 100명을 로마에 인질로 보낸다.

한편, 한니발은 로마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지역)로 도망쳤지만, 결국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어요.

만약 한니발이 승리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시켰어요.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던 로마제국은

승리를 만끽하기도 전에 같은 로마인들끼리 내전을 치르게 돼요.

 

이긴자의 역사가 아닌

여러 시각으로 균형있는 시각으로 포에니 전쟁을 되돌아보면서

나아가 삶의 지혜까지도 터득하게 되는

초등세계사전집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이야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역사배경지식이 쌓이고 또 쌓이네요.

몰랐던 세계사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