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피 -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
안드레아 드워킨 지음 / 동문선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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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포르노그래피>(안드레아 드워킨, 유혜연 역, 동문선)

포르노그래피가 문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사회에서 이 책은 일종의 고전이다. 포르노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특히 이 저서를 남성 중심으로 제작되고 유포되는 포르노그래피의 반대 근거를 수립하기 위한 지침으로 사용할 만하며, 또 실제로 그러한 듯하다. 대저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남녀의 차이 내지는 차별을 논한 학자들은 상당수가 이 책에 그 논리적 뿌리를 대고 있다.

저자 드워킨은 세계에서 아마도 포르노의 가장 큰 생산지이면서 소비시장일 미국에서 포르노의 금지를 위해 실천하고 투쟁하고 있는 페미니스트이다. 이런 그녀의 호전적인 논의를 거치면 포르노에 관한 한 일말의 우호적인 주장은 처절하게 몰락하고 만다. 다소 피해를 과장한 듯한 진술에서 시작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포르노가 여성 인권에 대한 멸시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러므로 (주의하라!) 이 책을 통해 포르노그래피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남자들은 심한 낭패감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포르노에 훨씬 많이, 그것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접근하는 남성들이 오히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로 호전적인가 하면, 가령 그녀는 이 책에서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한 우호적인 신화를 무너뜨리기 위해 면밀히 고찰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이르면 그를 우상으로 삼은 내노라하는 예술가나 사상가의 의식이 여지없이 망가지고 만다. 그 중에는 아뽈리네르도 있고 바이런도 있으며 바따이유도 있고 바르뜨도 있다. 비난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드의 전기작가, 번역자 내지는 출판업자에게로 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연인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출간되어 있는 사드의 저서 <소돔 120일>에는 번역자의 이름이 없다!) 결론적으로 사드가 여성의 인권을 망친 원흉임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드를 둘러싼 양극단적인 평가에 대한 최종 검증은 개개인의 몫이다.)

물론 이런 드워킨의 관점은 포르노에 대한 관점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Susan Brownmiller는 포르노를 보수주의적, 진보주의적, 그리고 급진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분류하였는데, 이 중 <포르노그래피>는 그 마지막의 것인 급진 페미니즘적 관점을 대표하는 저서이다. 그러므로 다소 격앙된 톤의 이 책이 포르노에 대한 전방위적인 논의 속에서 완전히 균형 감각을 갖추고 있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포르노의 실제 피해 여성들과의 면담을 통해 그리고 미처 간과되고 있는 포르노의 양상에 대한 폭로를 통해 그 실체를 알리려는 노력을 참으로 바람직하다. 다시 한번, 비록 이 책을 통해 포르노에 대한 우호적 노선을 완전히 개조하지는 못한다 할 지라도,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접근하는 포르노의 해악에 무심한 남성들은 이 책을 읽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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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영어 사전 - 개정판
안정효 지음 / 현암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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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가짜 영어 사전>은 사전이 아니다. 제목에 걸맞게 그 분야에서 아주 사전의 기능을 하지 못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 보다도 이 책은 '한국인의 영어 교육에 대한 비판서이자 올바른 영어 표현에 대한 지침서'라고 불리울만한 요소를 더 많이 지니고 있어서 다분히 문화비평서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아도 좋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의 언어 문화를 바라보는 자아비판적 안목'이라는 부제라도 달고 나오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무작위로 어느 페이지를 들추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으려니와, 이 <가짜 영어 사전>은 한국인의 터무니없는 영어 사용을 심하게 질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처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에 의해 '가짜영어'라고 일컬어지는 말을 써 온 사람들로서는 부끄러운 자기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줌 직하다.

영어와 수십 년을 친하게 지낸 그의 명성에 걸맞게 안정효는 이 책에서 영어에 대해 장인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다소 시니컬한 시선으로 쓴 그의 책을 읽으면, 첫째 그 자료 수집의 방대함에 놀라고, 두 번째 일상 언어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에 놀란다. 아울러 그는 한국인의 영어 사용에 대해 할 말이 무척 많았음이 분명하다. 사실 그 뿐만 아니라, 영어권에서 생활하고 온 사람들은 한국인들의 괴상한 영어 창조력, 응용력 및 활용에 대해 아슬아슬한 애처로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므로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텃밭에서 몹쓸 자갈을 걸러내려는 심정으로 저자는 멋지게 일구어야 할 우리말 터전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영어를 가려내고 또는 바로잡고 있다. 그의 작지 않은 이 노고는 최소한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얼마든지 반겨 좋을 듯하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엉터리 영어를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어에 대한 애정이 남다름을 보여주는 데, 필자로서는 이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반갑다. 영어를 잘하려면 우리말을 더 잘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동아일보 ...월 ..일자)은 조기 영어교육에 혈안이 되어 있는 철부지 엄마들에게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강한 철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서문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오염된 영어에 대한 책임은 텔레비전, 그 중에서도 연예, 오락 쇼에서 사용하는 방송인들의 언어 사용에 가장 지대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의 구체적인 사례가 방송인들의 언어 구사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누구보다도 이런 분야에서 일하는, PD를 비롯한 모든 방송인이 필독해야 한다. 방송은 모름지기 올바른 언어로 국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엉터리 영어로 무지를 빛내며 나아가 나랏말의 왜곡과 오염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틈에 저렇게 메모를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저자는 가짜영어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또 정리해 두었지만, 그의 글에는 아쉽게도 비판은 넘치되 대가로서의 관용이 없다. 가짜 영어에 대한 그 모순을 직시할 수 있다면 대안을 제시할 능력도 있었으련만, 안정효는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가하기에 바빴다.

그러니 그릇된 영어 사용을 멋도 모르고 사용하는 한국인들을 꾸짖을 줄은 알아도 그 안타까움을 어루만지거나 치유하려는 노력은 아무래도 부족해 보이며, 질타에 가까운 조롱이 넘치나 온 국민을 그릇된 영어나 사용하는 죄인을 만들어버린 느낌이 들어 편안히 읽기가 때론 부담스럽다.

그러므로, '외국어 또는 외래어로 자국어의 부족한 어휘를 채우려는 노력은 어느 나라에선 있다,' '그런 어휘 확장 노력을 재치의 일종으로 또는 펀(pun)의 일종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또는 lingua franca(제3국인끼리 사용하는 국제혼용어)로서의 영어의 역할로 인해 각 나라마다 엉터리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언적 영어(local English)가 생성될 수도 있다,' 등의 언어학적인 이론이나 변명을 책 후미에 덧붙여 놓았더라면 그나마 지적은 당하되 위로를 얻어 독자의 기분이 한결 나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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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 강의 섹슈얼리티 강의 1
한국성폭력상담소 엮음 / 동녘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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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책을 선택할 경우 이 책의 경우는 독자에게 착각을 일으키거나 낭패를 보게 할 수 있다. 이 책은 '섹슈얼리티'를 '강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섹슈얼리티는 여성의 그것이며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강의는 여성성에 대한 또는 여성학 강의를 뜻한다. 아마도 '여성의 입장에서 본 섹슈얼리티 강의' 아니면 그냥 착하게 '여성학 강의'라고 제목을 붙이는게 훨씬 적절할 뻔했다. 이런 식의 제목 달기는, 나쁘게 말하면 과대포장 내지는 지적 오류이고, 좋게 말해봤자 잘못된 제목 붙이기나 여성학 팔아먹기에 불과한 듯하다.

이 책은 여성학과 관련된 10명의 여성 강사 내지는 학자들이 쓴 여성학적 섹슈얼리티를 기술한 10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이런 스타일의 편집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대개 1990년대 이후 예전 운동권 출판사들은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는 이들에게 지면과 원고료를 제공하고, 대신 그들이 강의하는 학생들에게 출간한 책을 대학교재로 사용되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상업성을 발휘해왔다. 이렇게 하면, 가령 이 <섹슈얼리티 강의>의 경우, 출판사는 적어도 10개의 대학에, 그것도 한 학기가 아니고 매 학기마다, 안정되게 판매할 수 있을 터이다.

아무튼 이 책은 여성편향적인 저서이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성에 관련된 교육이 거의 여성 강사에게 할당되고 있다. 짐작하건대,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여성에게 독점적인 학문이고, 따라서 소위 여성학의 강사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양해가 이루어져 있는 탓인 듯하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섹슈얼리티가 페미니즘의 독점적 테마는 아니며, 어쩌면 그 독점적 이용은 정확한 섹슈얼리티의 이해에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이 <섹슈얼리티 강의>도 그런 우려를 낳고 있다.

대개의 여성학 강의 내지는 교제는 한국 사회에서 성과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현상과 문제는 전부 남성들에 의해 조성되며, 그 근저에는 가부장제적인 전통이 버티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바에 따르면, 매매춘, 낙태, 심지어는 레즈비언들의 현존도 모두 한국 사회의 남성중심주의가 그 원인이다. 물론 이는 틀린 말은 아닐 지라도, 이런 식의 섹슈얼리티 취급은 페미니스트의 영토 확장은 될 지언정 객관성을 유지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드물지 않다. <포르노그래피>를 쓴 안드레아 드워킨은 포르노그래피를 일반론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이 아닌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연구하였으며, 그리하여 그 부제는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이다. 브리스토우의 <섹슈얼리티>에서도 페미니즘적인 시각은 돋보인다.

물론 이런 책의 출간은 의미가 있다. 적어도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가 확장될 것이고, 아직 성적 주체성이나 가치관을 과학적이고 철학적으로 규정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한국 사회의 그릇된 성문화를 반성하고 개선하도록 하는데 공헌을 하리라고 믿는다. 허나 가령 성폭력이나 낙태 같은 것은 심각하다 하더라도 그 경우를 닥치지 아니한 사람들에겐 무관심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다시 한번, 대학생을 계몽하기 위한 목적에 맞춰져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어쩌면 페미니스트들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강의를 이 책에서와 같이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섹슈얼리티를 논할 때 그 어느 것에도 --예를 들면 이성(異性), 낙태, 매매춘, 혼전 성관계, 외모, 성폭력 등-- 구애받지 않고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쪽은 남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은 섹슈얼리티를 말하자면 남녀의 성차에서 남성을 상정해야 하는 듯하다. 그러니 남성이 성에 대해 포괄적인 정의와 아포리즘을 만들어내고 문제성을 들추면 여성은 그 뒤를 이어 비판을 가하는 형국이 된다. 따라서 <섹슈얼리티 강의>라고 제목을 달고도 여성주의적 관점만을 전달하는 상황에서는, 혹시 성해방과 남녀 평등의 글쓰기에서도 '언제나 이미' 남녀의 불평등이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아니면 섹슈얼리티에 관한 한 애당초 중립적인 담론은 불가능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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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프로이트
데이비드 스태포드 클라크 지음, 최창호 옮김 / 푸른숲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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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프로이트>(데이비드 스태포드 클라크, 푸른숲)

개론서에는 단점과 장점이 있다. 물론 단점은 그 거친 축약으로 인해 독자에게 왜곡된 지식을 줄 우려가 있다는 것, 그리고 독자가 원전을 등한시하게 함으로써 천박한 지식을 얻는 수준에 머물게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반면에 장점은 그것이 초보자에게는 입문서로 동기부여를 한다는 점이고, 또 일정한 지식이 있는 독자에게는 요긴한 자기정리 및 확인의 구실을 해준다는 것이다. <한권으로 읽는 프로이트> 역시 이런 장단점을 골고루 지니고 있는 프로이트 개론서 중 하나이다.

주지하듯, 프로이트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으며, 이미 그 영문 표준판(Standard Edition)은 20여권의 방대한 양으로 한글로도 번역되었다. 양이 이러하니, 프로이트를 배우고 싶은 입문자가 그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대는 프로이트를 읽기를 필요로 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이미 한 세기를 풍미하였고, 새로운 세기에도 도저히 그 열기와 가치가 줄어들 것 같지 않은 사상이다. 여전히 우리 시대는 프로이트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고, 그러니 어찌하랴, 개론서의 단점을 다 감안하고라도 그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판이니!

교육가, 의사, 광고인, 화가, 작가, 문화비평가, 영화인,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를 알 필요가 있고 또 알고싶어 한다. 이미 전문가의 궤도에 올라선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반추하는 의미로라도 이런 류의 책을 읽음직하다. 단, 초보자에게 조언하건대, 한번의 독서로 프로이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말 것 -- 물론 프로이트가 그다지 녹록하지 않으니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비록 제목은 '한권으로 읽는 프로이트'이지만, 이 책은 프로이트를 공부하는 중에는 자꾸만 돌이켜 읽어서 전문 용어의 개념부터 조금씩 소화해갈 필요가 있다. 그래도 그 용어가 낯설다면, 그건 정신분석학 내지는 프로이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일 것이므로 책 말미에 붙은 작은 용어 해설을 참조하면 된다. 그리고 어쩌면, 곁에 두고 볼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런 개론서가 또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개론서의 또 다른 미덕이지 아니한가.

이 책의 순서 역시 그러하거니와, 대개의 프로이트 요약본은 그의 전기를 따라 전개되기 쉽다. 그 이유는 프로이트의 사상의 영역이 워낙 넓어 연대기적인 기술이 요약에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시일이 흐르면서 수정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토막토막 끊어져 있는 것은 아니며, 다 읽고나면 적어도 프로이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일관되고 전반적인 그림은 분명 그려질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군데군데 비교적 길게 인용된 프로이트의 원전 부분도 곰씹으며 읽자.

'한권으로 읽는...'류의 책이 유행하는 까닭과 비판 그리고 위험성을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 개괄을 끝냈다면, 그리고 심층 학습을 원한다면, 이제 프로이트 원전을 사냥하러 나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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