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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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책에 대한 나의 주접으로 가득 차 있다...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는 창비에서 나온 300번째 시집이자. 기념 시선집이다. 창비에서 86명의 시인들이 낸 시집에서 시 한 개씩만 골라 모아 놓은 책이다. 주제는 ‘사람과 삶’이다. 포괄적인 주제인 만큼 각양각색의 시들이 모여 있지만, 시를 하나하나 다 읽고 나면 시집 전체의 방향성이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 책이 우리 집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학생 때부터 조금씩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을 읽기 시작했다. 늘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데나 펼쳐 읽어서 다 읽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이 시집의 좋은 점은 바로 86명의 시인들의 삶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시집 전체에서 가장 좋은, 그리고 주제에 맞는 시 하나를 뽑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렇게 엄선한 시들인 만큼 어떤 페이지를 펼쳐서 읽어도 하나하나가 다 교과서에 실려도 될 만큼 정말정말 좋다.

솔직히 시집 한 권을 읽고 거기에 있는 모든 시들로부터 감명받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시집은 계속 깊은 인상을 받고 감탄하고 곱씹느라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가 없다. 시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너무나 소중하다. 지금도 목차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시 제목들을 읽어내려가면 각각 어떤 시들이었는지, 그걸 읽을 때의 내 감정이 어땠는지 떠오른다. 특히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겼던 시는 고르기 너무너무너무 어렵지만 권혁웅 시인의 <독수리 오형제>였다. 시의 연마다 번호를 매기는 독톡한 구성 안에 가난한 환경에서 곰돌이에 눈을 붙이거나 고시원에 가는 등 각자 살길을 찾아 아등바등 살아가는 '정복이네' 다섯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아주 짧은 문장으로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마지막엔 화재로 인해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결말부를 다함께 불새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이미지로 승화시켜서 슬픔으로 큰 인상을 주는 시다. 그것과 비슷한 시가 최영철 시인의 <성탄전야>라는 시였는데 정말 시를 읽고 눈물이 펑펑 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마음이 정화되고 인류애를 회복할 수 있는 시집이다.....만약 인류애를 잃은 것 같다면 이 시집을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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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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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모와 도덕경을 함께 리뷰해보려고 한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 나오는 모모와, <도덕경>을 지은 노자가 만나면 어떤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아마 모모는 텅 빈 원형 극장 가운데, 또는 고대 중국의 한 물가에 서 있는 버들나무 아래의 널찍한 바위 위에 걸터앉을 것이다. 그리고 무릎 위에 팔꿈치를 얹어 놓고, 턱을 괸 다음, 몇 시간이고 노자의 담담한 강론을 들을 것 같다. 특유의 검고 빛나는 눈빛을 보내며. 시간이 지나고 노자가 말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지기 전에 모모는 어떤 말을 할까?
언뜻 보기에 모모와 노자는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 같다.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사는 세상의 아웃사이더지만 동시에 생전이든 후대이든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인사이더이기도 하다. 그러나 잘 헤집어 보면 분명 둘이 만나 대화를 나누었을 때 의견이 무조건 일치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이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첫 번째로 들 수 있다. 모모의 세계관이 노자의 세계관과 다른 점은 바로 그 세계의 근원에 있다. 모모의 세계의 근원은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꽃이라는 물질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그 꽃잎이 떨어지는 만큼 시간이 사라지기도 한다. 반면에 노자의 세계관의 근원인 ‘도’는 아무런 형태도 맛도 냄새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 만물을 지배하기는 한다. 여기서 모모와 노자의 첫 번째 의견차가 생긴다. 모모는 ‘시간은 꽃이다’라는 은유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노자는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고 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동화 속에 사는 모모가 느끼기에 노자의 ‘도’는 지나치게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또 ‘사물에 이름을 붙여서는 본질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노자가 생각하기에 모모가 소중히 여기는 시간의 꽃은 시간의 본질을 표현할 수 없는 허상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둘이 언쟁할 수도 있는 포인트는 ‘인위’에 대한 것이다. 모모는 물론 남루한 옷을 입고, 무너진 작은 원형극장 안에서 살고 있음에도 필요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을 보면 물질적으로는 인위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모는 연극놀이에 심취해 있다. 친구 기기와 자신이 공주이고 기기가 왕자라고 생각하고 놀이를 하거나, 아이들과도 자신이 정말 선장이 된 것처럼 실감나게 연극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노자가 보면 딴죽을 걸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마를 짚을 만한 일이다. 노자는 스스로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 모모가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허황된 욕망이라고 보고, 좋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노자는 욕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욕망들에 의해 드러나는 배타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 배타성이란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의 욕망을 실현하려다 보면 그 욕망에서 비켜난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고. 또 그 모든 것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장이 되고 싶은 욕망에 빠져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게 된다면 현재의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모모는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란 본래 허상을 좇고 판타지 속에 사는 존재. 그 연극이 미래에 불러올 자존감의 하락 같은 것을 걱정할 모모가 아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잠시 둘 사이에 긴장감이 흐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노자 정도의 식견을 가진 사람은 모모의 침묵과 경청 속에서 스스로 모모와의 차이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둘은 분명 접점을 찾을 것이다. ‘집착하지 말라’는 진리에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세상은 상대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있음과 없음이 같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어렵고 쉬운 것이 같이 있어야 문제가 이루어지고 길고 짧은 것이 같이 있어야 비교가 되고 높고 낮음이 같이 있어야 경사가 생기고 앞과 뒤가 같이 있어야 순서가 생긴다. 그러므로 슬픔 속에 행복이 있고, 좌절 속에 희망이 있다. 나의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열린 눈으로 보고 묵묵히 행하라”고 하였다. 노자는 온갖 명예와 돈과 권력에 집착하는 고대 중국의 제후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모모도 집착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바로 회색 신사들이다. 그들은 헛된 일에 시간이 닳는 것에 그토록 집착했었다. 스스로의 시간을 걱정하며 시가를 태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의 시간까지 빼앗으며 살아남으려 했다. 그들이 말하는 헛된 일이란 여가를 즐기거나, 무슨 빵을 살지 한참을 고민하며 고르는 시간 등이다. 그런 시간들을 모두 없애고 절약하여 일하고 돈을 버는 데에만 귀중한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이 회색 신사들의 생각이다.
노자가 이들을 본다면 제후들에게 한 이야기를 똑같이 해줄 것이다. 내면의 가치와 행복에 집중하지 못하고 오로지 시간만이 목적이 되어 움직이는 회색 신사들은 진정으로 삶에서 추구해야 할 것이 뭔지를 잊어버렸다.
내가 사는 하루를 복기해 보면, 하루의 밀도가 절대 항상 똑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잠자는 시간은 얇고 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전에 배운 그날의 강의들을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밀도가 높은 순간도 있다. 마감 직전에 부랴부랴 과제를 끝낸다든가, 중요한 공연을 감상문을 쓰기 위해 몰입해서 본다거나 하는 순간들이다. 이렇게 융통성 있게 밀가루 반죽처럼 굵어졌다 얇아졌다 하는 하루를 살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융통성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루가 온통 느긋한 순간만으로 채워진다고 생각해 보면 그렇게 지루하고 의미 없을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만약 하루가 바쁘고 아등바등하는 순간만으로 가득하다면? <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을 도둑맞은 사람들처럼 기쁨도 슬픔도 느낄 새가 없는 회색빛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어느 양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은 모두 불행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밀도가 낮은 순간도, 높은 순간도 모두 존재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모모도 아마 이런 노자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모모와 노자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면 작지만 힘센 리더십이 있다는 것이다. 모모와 노자는 모두 유명한 제후도, 돈 많은 인기스타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 없이도 겸손함과 그들 특유의 기지로 사람들을 저절로 끌어모은다. 그런 매력을 가지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와 같은 매력을 지향할 것인가.
현대에 살면서 <모모>와 <도덕경>, 두 책을 모두 읽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나는 즐거울 때는 모모처럼, 힘들 때는 노자처럼 살고 싶다. 아직 젊고 세상에 누리고 싶은 것들이 많은 나에게 노자는 너무 금욕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미디어의 홍수와 허황된 이름들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어느 외로운 밤이 오면, 나는 잠시 <모모>를 덮고 <도덕경>을 펼쳐들어 쉬어가게 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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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와 완전한 세계 높새바람 6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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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화지만 분량이 엄청나다. 아마 500쪽 가까이 될 것이다. 게다가 시리즈라서 그런 책이 네 권이나 있다. 하지만 읽다 보면 남은 장수가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다.
내가 소설가를 꿈꾸도록 만들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매력적인 세계관과 묘사가 그야말로 쾌락을 위한 독서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독서가 필요하다.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에게 권해 주고 싶을 만큼 재미있다.
또 이 책의 좋은 점은 바로 그 오리지널리티에 있다. 무국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어떤 다른 판타지 소설의 영향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 견문이 좁은 탓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한국 판타지소설 중 손꼽힐 만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고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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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 베어 카르페디엠 7
벤 마이켈슨 지음, 정미영 옮김 / 양철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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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피릿베어는 간단히 말하자면 악마같던 청소년 콜이 갱생하는 이야기다. 본인만 갱생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 피터까지 끌어들여 치유자는 데까지 발전하는 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콜은 심각한 폭력 범죄를 저질렀으나 감옥에 가는 대신 틀링깃 아메리칸 원주민의 풍습에 따라 어떤 섬으로 가서 홀로 생활하며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교화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원형 평결 토의같은 생소한 절차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모습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는다면 소설 중반까지 죄를 뉘우칠 생각은 전혀 없고 갱생의 여지가 전무한 주인공 콜의 안하무인에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과연 이런 청소년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까, 고민도 하게 될 것이다. 감방에 가두어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할까? 아니면 한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해 인간의 갱생 가능성을 믿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까? 스피릿베어를 만나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게 되는 콜의 이야기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현실에서 이런 청소년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특히 피해자를 가해자 곁에 두는 잔인한 일이 소설처럼 좋은 결말로 끝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피릿베어가 진짜든 아니든, 스피릿베어로 상징되는 자연이 사람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믿고 싶다.
또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틀링깃 원주민의 존중이 깃든 회의 방식뿐만 아니라, 분노와 트라우마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분노의 삭정이나, 토템 만들기, 동물 춤 등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치유의 첫걸음일 것이다. 학생들이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보면서 정신건강을 되찾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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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낚시통신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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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 낚시 통신>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10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놓은 단편집이다.

단조롭고 무기력한 일상에 삶의 활력을 빼앗기고 있어, 인생의 본질을 찾아 나서려는 모든 삶의 여행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은어 낚시 통신>에는 <은어>, <January 9, 1993 미아리통신>, <카메라 옵스큐라>등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 중 대표 격인 <은어 낚시 통신>은 도시의 일상에 묻혀 사는 30대 초반의 남성이 주인공이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은어 낚시 모임’이라는 비밀 모임의 초대장을 받고, 문득 과거의 연인 김청미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사막에 사는 사람, 상처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인물이다. 그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은어 낚시 모임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그러한 주인공이 고독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을 찾아 도시 아래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로 떠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우선 <은어 낚시 통신>에서 눈여겨볼만한 점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양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독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살아야 하는 속세와, 인간 본래의 내면으로 회귀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탈속의 세계. 그리고 주인공은 속세에서 본질의 세계로 ‘회귀’하게 되는데, 이때 주인공이 비유되는 것은 바로 회귀 본능을 가진 ‘은어’이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본질의 세계에서 내면적 가치와 낭만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모두 현실에서 알게 모르게 소외되고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들이다.

" '물론 그들은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요. 하지만 역시 삶에 제대로 뿌리박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아무튼 우리는 한두 달에 한 번쯤 은밀히 모였다가 헤어지곤 해요. 어떻게 보면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현실적인 삶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는 살아지지 않으니까, 말하자면 지하에다 다른 삶의 부락을 하나 더 세운 거예요. 우리가 은어를 문장으로 한 것도 다른 뜻이 아녜요. 말하자면 우린 여기서 거듭나기 연습을 해요. 어떻게든 우리 방식으로 버티고 사는 법을 배운단 말이죠.'
나는 흐릿한 차창을 쳐다보며 내가 방금 떠나온 세상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와 있는 곳이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지, 그곳이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지 전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중략)
'세계는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져 있지. 자넨 지금 저쪽으로 와 버린거야.' "

이 같은 비유와 세계관 설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의 또한 고달픈 현실을 사는 독자들에게 잊고 있던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찾아 돌아가라고 촉구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주제를 은어의 회귀라는 알레고리를 이용해 환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한 마리 은어처럼 속세에서 본질의 세계로 회귀하기 위해 건너게 되는 징검다리는 바로 그의 옛 연인인 ‘김청미’이다. 소설 속에서 김청미는 내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이며 전지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 '이제 당신도 돌아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당신은 지금까지 너무 먼 곳에 가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간 돌아오는 길을 영영 잊어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
정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아주 낯선 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삶의 사막에서, 존재의 외곽에서.
지금부터, 돌아가고 싶다고 나는 간신히 그녀에게 말했다."

이처럼 김청미가 주인공의 회귀를 위한 지표 같은 상징적 존재로서만 그려지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다. 김청미의 입장에서 바라본 주인공의 모습이 궁금했다. 차갑기만 한 인물이었을지, 아니면 그 안에 언뜻언뜻 보이는 따스함이 그를 은어낚시모임으로 데려가는 계기가 되었을지.
하지만 꿈틀거리는 은빛 물고기 한 마리를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선명한 회화적 묘사와 뛰어난 도시적 감수성, 그리고 소설 곳곳에 녹아든 폭넓은 문화적 요소들로 인한 지적인 쾌감은 그러한 단점마저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이 소설에 대한 인상을 좋게 만든다. 여러모로 쉽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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