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낚시통신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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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 낚시 통신>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10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놓은 단편집이다.

단조롭고 무기력한 일상에 삶의 활력을 빼앗기고 있어, 인생의 본질을 찾아 나서려는 모든 삶의 여행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은어 낚시 통신>에는 <은어>, <January 9, 1993 미아리통신>, <카메라 옵스큐라>등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 중 대표 격인 <은어 낚시 통신>은 도시의 일상에 묻혀 사는 30대 초반의 남성이 주인공이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은어 낚시 모임’이라는 비밀 모임의 초대장을 받고, 문득 과거의 연인 김청미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사막에 사는 사람, 상처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인물이다. 그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은어 낚시 모임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그러한 주인공이 고독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을 찾아 도시 아래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로 떠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우선 <은어 낚시 통신>에서 눈여겨볼만한 점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양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독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살아야 하는 속세와, 인간 본래의 내면으로 회귀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탈속의 세계. 그리고 주인공은 속세에서 본질의 세계로 ‘회귀’하게 되는데, 이때 주인공이 비유되는 것은 바로 회귀 본능을 가진 ‘은어’이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본질의 세계에서 내면적 가치와 낭만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모두 현실에서 알게 모르게 소외되고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들이다.

" '물론 그들은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요. 하지만 역시 삶에 제대로 뿌리박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아무튼 우리는 한두 달에 한 번쯤 은밀히 모였다가 헤어지곤 해요. 어떻게 보면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현실적인 삶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는 살아지지 않으니까, 말하자면 지하에다 다른 삶의 부락을 하나 더 세운 거예요. 우리가 은어를 문장으로 한 것도 다른 뜻이 아녜요. 말하자면 우린 여기서 거듭나기 연습을 해요. 어떻게든 우리 방식으로 버티고 사는 법을 배운단 말이죠.'
나는 흐릿한 차창을 쳐다보며 내가 방금 떠나온 세상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와 있는 곳이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지, 그곳이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지 전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중략)
'세계는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져 있지. 자넨 지금 저쪽으로 와 버린거야.' "

이 같은 비유와 세계관 설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의 또한 고달픈 현실을 사는 독자들에게 잊고 있던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찾아 돌아가라고 촉구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주제를 은어의 회귀라는 알레고리를 이용해 환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한 마리 은어처럼 속세에서 본질의 세계로 회귀하기 위해 건너게 되는 징검다리는 바로 그의 옛 연인인 ‘김청미’이다. 소설 속에서 김청미는 내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이며 전지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 '이제 당신도 돌아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당신은 지금까지 너무 먼 곳에 가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간 돌아오는 길을 영영 잊어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
정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아주 낯선 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삶의 사막에서, 존재의 외곽에서.
지금부터, 돌아가고 싶다고 나는 간신히 그녀에게 말했다."

이처럼 김청미가 주인공의 회귀를 위한 지표 같은 상징적 존재로서만 그려지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다. 김청미의 입장에서 바라본 주인공의 모습이 궁금했다. 차갑기만 한 인물이었을지, 아니면 그 안에 언뜻언뜻 보이는 따스함이 그를 은어낚시모임으로 데려가는 계기가 되었을지.
하지만 꿈틀거리는 은빛 물고기 한 마리를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선명한 회화적 묘사와 뛰어난 도시적 감수성, 그리고 소설 곳곳에 녹아든 폭넓은 문화적 요소들로 인한 지적인 쾌감은 그러한 단점마저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이 소설에 대한 인상을 좋게 만든다. 여러모로 쉽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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