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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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치 상상력만으로 전개되는 소설인 것 처럼 보이지만, 독특한 소재는 그저 하나의 장치였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 소설은 차가운 세상을 보여주면서 , 그렇지만 따뜻한 어른이 되어가는 나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소설은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한 장으로 정리해준다


.

"뒤틀린 어른이 뒤틀린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가 자라 뒤틀린 어른이 되어 다시 뒤틀린 아이를 만드는 세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온전한 어른이 사라진 세상이 되기 전에, 상처와 슬픔이 무기가 되어 또 다른 출혈을 일으키는 세상으로 향하지 않도록, 그런 마음으로 썼다."

"이건 아이인 적 없다는 듯이 구는 어른들이, 단 한 번도 동화를 믿어 본 적 없다고 착각하는 어른들이, 환상을 꿈꿔 본 적 없다고 믿는 우매한 어른들이 만든 끔찍한 이야기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어떤 어른인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직장 특성 상 직업 트레이닝을 받는 학생들이 가끔 오는데, 그들에게 '책은 가지고 다녀야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 비슷한 충고를 받을 거라고 예상 하고 미리 충고해줘야겠다는 마음에서 한 말이기도 했고, 그게 트레이닝을 받는 기본 자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마음 저 한 구석엔 따끔한 한 마디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뭔가 어른답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그런데 지금은 '그 때 내가 너무 다 아는 어른인 것 처럼 말한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고 조금 부끄러워졌다. '어른인 척'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지만 이런 반성도 책을 다 읽은 지금 하게 된 것이고, 책을 읽으면서는 마치 내가 책 속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그 풍경이 그려지는 '예쁜 글'에 감탄했다.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도 예쁘고, 푸른빛이 났을 숲의 풍경도 예쁘고, 풀과 숲이 나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도 예쁘다. 뉴스에서 몇번이나 본 것 같은 사건을 소설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분노하기보다 슬프고 눈물나고 감탄하게 된다.

"도현은 경계에 서 있다. ... 넘으면 돌아갈 수 없다. ... 경계 너머는 현실과 비현실이 혼잡하게 섞인 세계. 피는 꽃처럼 터지고, 길고양이는 솜 인형처럼 느껴지는 부드럽고 잔혹한 세계.

도현이 그 경계의 선을 밝기 전에 누군가가 다시 이곳으로 끌고 와야 한다. 비린 냄새와 어두운 산이 존재하는, 고통이 잇따르는 잔혹하기만 한 세상으로.

그렇지만 내일이 있는 세상으로."

한번, 두번 읽었던 부분이다. 나인의 친구가 '현재'와 '내일'인 것도 작가의 의도가 있었겠구나. 장편인데 지치고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가 '현재'와 '내일' 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인은 절대로 경계 너머로 갈 일이 없겠구나를 나도 모르게 확신하게 되고, 도현 또한 그런 나인에 의해 '이곳'으로 오겠구나. 그리고 내일이 있는 삶을 살겠구나 를 이 소설은 미리 스포를 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할 여유를 갖을 수 있었고, 맘 편히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행복은 살아가는 도중에 느끼는 잠깐의 맛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사람은 미래다. 단맛, 쓴맛, 떫은맛, 매운맛, 신맛, 짠맛을 느끼는 것처럼 행복도 무엇을 먹었느냐와 비슷하게 선택에 따라 감정을 느끼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벗겨 낸 세상의 바밀을 한 겹씩 먹으면, 어떤 비밀은 소화되고 흡수되어 양분이 되고, 어떤 비밀은 몸 구석구석에 염증을 반든다. 비밀의 헌 꺼풀을 먹지 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의 시스템은 그걸 먹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설정되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시기가 너무 이르면 비밀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배출시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텅 빈 몸이 된다."

소설을 읽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싶을땐 수필을 읽었고 소설보다 수필이 그 작가와 더 맞닿아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역시 소설이 주는 작가의 생각들이 더 흥미롭고 오래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년에 아홉수이고, 내 후년엔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기 때문에 연말인 지금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혼란스러움보단 설렘이 더 컸고 내가 하게 될 경험들이 너무 기대되었었다. 그런데 요즘엔 뭔가 지난 것들로부터 내가 분리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때에 이 책을 만난 것이 다행이고 위로가 되었다. 비밀들로 혼란스럽고 바뀌는 현실이 걱정스러운 나인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았고, 그저 세상을 누리고 보고 느끼라는 지모의 말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러다 언젠가 단단해질 거라는 경혜의 말은 위로가 되었고 버티고 사는 건 전부 강한 것이라는 주인 할머니의 말에 확신을 받았다.

이 책을 처음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 생각을 고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천선란 작가'에 대해 계속 찾아보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들을 갖고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천선란 작가의 다음 책이 기다려지고 응원하게 되는 책이다.

소설을 쓸 때 들었다는 '아틀란티스 소녀', '다시 만난 세계', '숲의 아이', '이름에게'를 들으며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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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잘쓰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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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에코가 알려주는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논문 목적 외에도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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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려요 무엇보다 네팔학교~ 좋은일을 하는 좋은 기업이라는 것에 알라딘 이용자로서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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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 명탐정 코난 085 명탐정 코난 85
아오야마 고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DCW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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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니 너무 재미있어요. 전에 보던것부터 차례대로 볼까 하다가 최근 편부터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 권 기대되요. 다시한번 코난에게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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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읽는 힘 -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안내서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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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험을 할수록 가깝게 느껴지는 학문은 철학인것 같아요. 고루하게 느껴지던 철학에 관심을 갖게되고, 저번학기에는 교양강좌로 대학에서 `생활속의 철학`이란 강의를 들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학문인 것 같아요. 입문서로 좋다고 하니 한 번 읽어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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