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쪽으로 튀어]를 봤다. 기술 시사를 봤던 H로부터 들었던 평가가 이해되면서도 과연 그게 온당한 평가인지 의심하게 되었다. 분명 만듦새가 아주 좋지는 않다. 후반 작업에 시간 혹은 예산이 부족했거나 촬영 소스 자체가 나빴거나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많이 거슬리지는 않는다.
이건 딴 이야긴데, 요즘 한국 메이저 영화들을 보면, 거의 다 편집 스타일이 비슷하다. 이게 임순례 영화인지 변영주의 영화인지 정지우의 영화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세 사람 다 딱히 트레이드마크 식의 편집 기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예를 들면 박찬욱의 플래시포워드 혹은 교차편집 같은), 이런 식으로 작가적 개성마저 희석시켜 버리는 상황이 점차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고 있다. 관객 혹은 대중은 금방 익숙해진다. 새롭게 확립한 스탠더드가 지금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지만 금방 지루해 질 수 있는 구조다. 이래서야 영화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나 소설가랑 다를게 뭔지 모르겠다. 현재 한국 영화에서 비주얼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경우가 몇이나 될까.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정도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있나...
하여간 본론으로 돌아와서 [남쪽으로 튀어]는 아마도 올해 개인적인 베스트 10 안에 들 거다. 작년부터 극장 개봉한 한국 영화들은 거의 다 봤지만, 가장 신선한 축에 든다. 특히 섬으로 옮겨와서 적응하는 부분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깨알같은 재미가 있다. 근데 이 부분이 딱히 서사를 진행시키지는 않고 쉬어가는 곳인데 결론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지루하고 억지스러울 수 있었던 결말부에 탄력을 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 만약 이 깨알같은 재미에 공감할 수 없었던 관객이라면 결말부에서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서사와는 별도로 존재하는 잉여의 시간. 한 30분쯤 되려나. 이 30분 때문에 이 영화를 지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섬에 온 첫 날밤, 네 가족이 한 방에 잠드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가장인 김윤석의 표정은 정말 심각하기 그지 없(어 보인)다. 나는 왠지 저 기분을 잘 알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그 때 김윤석이 귀신 이야기를 꺼낸다. 좀 지나친 감상일 지 모르겠지만,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그건 그 때 떠오른 어떤 생각 때문이었다.
흔히 이야기꾼이 불안과 공포에 질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야기를 해주고 대신 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떠돌이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이야기꾼을 태평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인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떠돌이만큼 불안하고 슬픈 존재가 있을까. 배제되고 박해당한 이들, 집 없는 이들에게 미래와 안정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들은 희망도 없고 집착도 없다. 마음 편할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이 텅 빈 것에 가깝다. 공허의 스케일이 다른 것이다. 떠돌이에 대한 낙천적인 이미지는 어쩌면 울타리 안의 사람들이 자기들 손으로 직접 쫓아낸 떠돌이에 대한 죄책감에서 좀 자유로워지기 위해 덮어씌운 것일 수도 있겠다. 하여간 이야기를 하며 울고 웃는 것은 듣는 주인이지만, 그 이야기는 이야기꾼 스스로가 자기를 치유하기 위해 행하는 일종의 처방이기도 한 것이다.
김윤석이 귀신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나는 마음이 좀 아팠다. 저 네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과 김우창의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를 읽기 시작했다.
 |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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