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학의 기원들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243
데이비드 C.린드버그 지음, 이종흡 옮김 / 나남출판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과는 참 오랜 인연이 있다.

대학 다닐 적에 복제, 제본해서 읽지도 않고 묵혀두던 복제본,

직장 다니면서 사서, 앞부분 조금 읽고 역시 묵혀두던 페이퍼백,

그리고 마침내 오늘 다시 사서 조금 읽고 있는(결국 또 어딘가에 처박아두게 될지도 모르는) 한국어 번역본.

 

저자 린드버그는

피에르 뒤앙(Pierre Duhem)이나 린 손다이크(Lynn Thorndike) 등의 (분과학문으로서의 '과학사학' 성립 이전의) 학자를 0세대,

앨리스테어 크롬비(Alistair Crombie)나 에드워드 그랜트(Edward Grant)를 1세대 중세과학사가로 본다면,

2세대쯤 되는 중세과학사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과학사학의 명문 위스콘신대의 수장이다).

과학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마주치게 되는 대가이자,

오랫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던 중세과학사 텍스트(바로 이 책)의 저자로서

과학사학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마침 좋은 번역자를 만나 한국어 번역본까지 나왔으니

서구 지성사, 과학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 꼭 일독을 권한다.

 

마침 <옮긴이 해제>에 나타난 저자의 '反휘그적 시각'이 인상 깊어 조금 인용해본다.

 

고, 중세의 학자들은 그들 나름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자신들이 물려받은 개념틀의 경계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경계선 안에서 그들은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결정했고 그 문제에 답할 유용한 방식을 구했다. 그들로서는 그 경계선 내에서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중세 말에 그런 개념틀로 작용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플라톤주의, 기독교 사상 등이 뒤섞인 풍부한 혼합체계였다. 중세 학자들은 그 혼합체계의 풍부한 설명력에 이끌렸다. 그 혼합체계가 그들이 질문한 문제에 즉시 정답을 제시하거나 미래의 성공을 약속하는 한, 그들이 그 체계를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먼 미래의 세계관을 예비하거나 선구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세계관을 검토하고 명료화하고 이용하고 비판하는 일이었다. ……우리 운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래세대가 비슷한 호감을 우리에게 표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예비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우리의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585쪽) 

 

역사를 공부하다가 보면 으레 빠지게 마련인 주화입마(anachronism)에 대한 훌륭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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