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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 ㅣ Miracle 1
강지영 외 지음, 김봉석 엮음 / 시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세 편입니다.
<인간실격>, <나의 왼손>, <질주>가 그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스릴러 장르에서 일상적인 공간의 이질적 변주는 많이 다루어지는 부분입니다. <질주>는 바로 그 공식에 충실한 이야기 입니다. 집요하게 한 인물을 붙잡고 극한까지 달리게 만듭니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나홍진 감독이 망원동이라는 공간을
살아 숨쉬는 생명체처럼 연출한 것과 비슷하게 <질주>는 전라남도 순천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캐릭터로 작업합니다.
스릴러 문학들 중 여럿은 공간을 도외시 하거나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명만 우리나라의 것을 쓴다고 스릴러 문학의 토착화가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작품들을 보면 꼭 그 지역이 아니라 다른 지명을 붙여도 작품이 성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외국의 어디라고 여겨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런 작품은 우리나라에 적을 두었지만 뿌리를 내리지는 못한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주>가 이룬 성취는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인간실격>은 홍정훈 작가의 스타일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홍정훈 작가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분명한 목표와 목적을 지니고 질기게 달려드는 캐릭터는, 그가 만드는 사건들을 독자로 하여금 쾌감에 젖어들게 만듭니다. 무모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차례로 성취하는 단계별 사건들은 게임의 스테이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매 스테이지의 괴물들을 물리치며 최종보스에게로 향하는 스타일은 익숙하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습니다. 괴물들을 잡으며 캐릭터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이번에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가 영웅의 그런 고뇌를 다루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동시에 <인간실격>을 읽으며 <데빌메이크라이>라는 게임 스타일이 겹쳐졌습니다.
물론 비슷한 장르에서 <데빌메이크라이>는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와 같이 피해갈 수 없는 롤 모델이지요.
<나의 왼손>에서 왼손은 사전적 의미의 왼손과 자아의 이면을 뜻하는 왼손, 두 가지로 읽혀집니다. 이야기의 골격은 곰곰하게 따지면 '뻔하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뻔한 설정을 슬그머니 뒤틀린 도식속에 오려 붙입니다. 독자는 초조해 하는 것이 인물인지 왼손인지 가늠하고 살피다가 덩달아 초조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 이라는 명칭을 당당히 붙일 수 있는 단편들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스릴러 문학이 이룬 성취가 고스란히 담겨진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미러클 시리즈의 힘찬 첫 걸음은 다음 걸음에서 도약을 위한 준비로 모자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