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의 시간을 담다 -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구본창 글.사진 / 안그라픽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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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 공명의 시간을 담다  (구본창 저) 

 

 리뷰 : 혜

 

​                                                                                                                           



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뻐야 산다.'는 요즘 책들답지 않게,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느낌에 끌렸거든요.  

옅은 분홍빛에 물든 백자 그릇을 담은 띠지(표지의 일부를 둘러싼 종이)를 벗겨내면,

바짝 메마른 작은 넝쿨이 하얀 공간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표지가 드러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이 이미지들은 구본창 작가의 작품인 '백자'와 '화이트'중 하나입니다.

 

이보다 더욱 화려한 작품들도 많았을 텐데

왜 이 책의 '얼굴'로 작은 그릇 한 점과 어디에나 흔히 있는 들풀을 택하였는 지,

이 둘의 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궁금하여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1. 기본소개


이 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진가 중 한 사람인, 중견작가 구본창 본인이 

자신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흘러왔는 지를 기술한 책입니다.

디자인 분야의 좋은 책들을 출판하는 안그라픽스의 문화예술 전문 브랜드, 컬처그라퍼에서

'21C컬처크리에이터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는 동시대의 문화예술 거장들의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영감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 첫 번째 책은 승효상 건축가의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입니다.)

 

저에게는 편견이 하나 있습니다.

예술은 설명을 하면,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을 하면,

작품은 점점 생기를 잃어간다는 내용이죠.

더군다나 교육을 위한 설명에는 귀기울이고 싶지 않습니다.

예술이야말로 상상과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영역인데,

한 번 주어진 설명이 여러 길을 막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탓에, 평소에도 예술을 설명하는 책은 피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고른 첫 번째 이유는 뜻밖에도

표지에 먼저 사로잡힌 것과 같이,

책 자체가 주는 느낌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2. 디자인 


(* 대부분 책 리뷰는 내용-구성,인용, 감상 중심이 많죠. 저는 이제부터 책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합니다. 내용을 담는 그릇인 책 또한 얼마나 많은 교감을 하였는 지, 독자들에게 어떠한 형태로 다가가고 책으로 빠지게 하는 지 살피겠습니다. 온전히 책을 아끼는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겠습니다. 인증과 같은 이미지 첨부는 생략해요. 가능하면 글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아담한 책입니다. (반양장본 | 312쪽 | 200*145mm | 515g )

하드커버가 아니어서 들고 다니기에 적당한 무게감입니다.


띠지의 조화도 좋습니다.

평소에 띠지는 책 내용보다는 홍보와 디자인을 위해 덧붙인 것으로 여겨서,

구입하자마자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반 이상을 덮은 띠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또 하나의 표지이자 책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입구입니다.

책의 내용을 고스란이 담은 표지는 실로 오랜만입니다.


책을 펼치면,

시원시원한 배열 또한 편히 다가옵니다.

본문의 활자들이 제법 큽니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들 (주로 사진이며 회화와 작업 풍경도 있습니다.)이

주요한 위치에 여러 크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러 사진이 한 데 있거나, 사진 한 장이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고,

작은 사진 하나가 덩그라니 홀로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여백을 많이 느꼈습니다.

큰 글자들과 이미지들이 가득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 또한 많습니다.

출판사나 이 시리즈가 지향하는 디자인일 지도 모르겠으나,

이러한 구성이 구본창 작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정적인 상태에서 대상 (사물, 풍경, 인물)과의 깊은 교감과 찰나를

요란하지 않은 형태로 담아내어 감상자들이 천천히, 대상의 이야기를 살피게 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프레임을 꽉 채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 아주 작은 점마냥 흩어져 있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 특징 때문에 작품에 대한 집중(찾기)과 휴식(상상하기)을 음미하며 감상하게 됩니다.  

책 또한 작가의 작품을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무슨 종이인 지 정확히 모르지만

매끈매끈한 질감 덕분에 작품 속 사물들의 감촉을 어루만지는 상상도 덧붙습니다.

빛을 강하게 받으면 글씨나 사진의 일부가 보이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불편한 느낌보다는

요리조리 책과 몸을 움직이며 '책을 더 잘 읽는'위치와 자세를 찾는 것이

흡사 빛을 중요시하는 사진작가의 심정을 얼핏 헤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3.  구성

 

사진집? 에세이?

무엇으로 이 책을 명명할 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책을 끝까지 읽고서야 저는 '에세이'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에세이essay란 우리말로 하면 수필이라 하는,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을 자유로이 쓰는 양식이라 하죠.

글은 물론이거니와 이미지마저도 그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만들고 매듭을 진 작품이 아니고, 계속 한 호흡으로, 글에서 드러나는 작가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생각과 글과 사진의 일치라고 해야할까요?


 구본창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18개의 챕터로 이뤄져있습니다.

사진공부를 시작한 80년대부터, 90년대, 2000년대 지금까지의 작가로서의 활동을 살펴

종종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연대기를 따라 작가의 이력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하는 점은 그 때 그 시절 작가가 품었던, 지금도 영향을 받는 가치관입니다.


의미심장한 제목인 '공명의 시간을 담다'와 마찬가지로 챕터 제목들만 모으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창작을 하는 작가인 지 감이 옵니다.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제목들을 소개합니다.


'낡은 시간을 수집하다.'

'목적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일상의 보석'

'비어 있기에 아름답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독'


이처럼 독자는 각 챕터별 제목으로 먼저 구본창이라는 사진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작가의 독백, 고백, 사진 (작품, 현장 모습)들이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꼭 한낮의 오후에 여유로이 차 한 잔 마시는 것과 같이 말이죠.

 

 

 4.  감상

 

구본창 작가의 이력만 살피면 패기넘치고 유능한, 영향력이 넘치는 예술인임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진가에 대한 이해가 아직 꽃피기 전인 80년대에 독일 유학을 시작으로, 

국내외를 넘나드며 작품활동과 사진전 기획을 포함해 역량있는 후배 사진가 양성에 힘을 쏟는 교수로서

끊임없는 교감과 실험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력에 더하여 일종의 '자기예술론'이기도 한 이 책이 사진용어며 작품해설이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쉽습니다.

사진에 대하여 익숙하지 않더라도 물 흐르듯 책 속 글자들이 마음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작가의 일기장을 엿 본 기분도 들었고요.

이 점을 계속 생각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구본창 작가에게서 주목한 주제들은, '소품, 수집, 교감'입니다. 

 

'소품'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작가는 유독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있지 않은 것처럼 여기는 대상에 집중합니다.

나비 박제, 물결, 넝쿨, 비누, 눈 쌓인 돌, 주차장, 벼룩시장에 나온 물건과 같은 것들에 말이죠.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하지만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나는 그것을 듣고 싶고, 그러한 작업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작은 목소리를 듣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애정이 필요하다. 따뜻한 눈이 있어야 보이고 읽힌다.

  아마도 나는 이런 애틋한 감정과 기억들을 기록하고 간직하려고 사진가가 된 모양이다. (p.185)'


'수집'은 소품만큼이나 대상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반영된 행동입니다.

보통 수집이라하면 연구나 취미를 위해 물건을 모으는 일이지만,

작가의 수집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름없고 낡은, 일상용품들을 모읍니다.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에게서 작가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씩 맞추어 세상을 바라봅니다.

형제 사이에서 열등감과 소외감을 느끼며 내향적으로 자랐다고 고백한 작가가

버려지고 덧없는 물건, 잘 해왔으면서 나서지 못 하는 학생에게 애정을 보내는 까닭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교감' 에 있어서 구본창 작가는 탁월합니다.

바다의 물결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고,

모델과 배우들 얼굴 너머의 사연을 이끌어내고,

파리의 건물모퉁이를 보호하는 경계석인 여러 샤스루의 사연을 담고,

역동적인 탈춤 대신, 탈 자체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단아한 백자에게서 수줍음 많은 분홍빛 얼굴의 아씨를 만납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사진 분야에서 스트레이트(연출없는 실제상황일까요?), 연출로 이미지를 담아낸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기기가 발달된 시기에서 우연히 얻어 걸린, 아름다운 이미지가 판을 치는 이 때에

사진가가 사진가로서 살아가는 길은 무엇일까요?

구본창 작가의 마음가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대상을 아름답게, 다양한 기법을 익혀 담아내기보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고, 느낀 바를 사진으로 잘 보여주기'가 아닐는 지요. 

관찰과 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고, 촬영을 위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고, 공부하고,

촬영 허가를 받기 위해 복잡한 절차와 긴 시간을 기꺼이 견뎌내는 작가는

거장이라는 완성형에 마침표를 찍지 않고, 괄호를 열어 두어 지금도 성장하는 예술인임을 알았습니다.


유독 자신을 고독한 자로 정의하며, '진공의 시간'을 보낼 때마다

그간 만나 온 대상과 자료를 정리하고

내 안의 영감을 발견하고

대상과의 대화를 준비한다는,

본인의 사진 작업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언제든 변형할 준비를 한다는 작가에게서

'청년 작가'로서의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작업실이나 전시장에서의 작가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 외서를 읽고 있는 작가의 옆모습 사뭇 진지합니다. 

(어느 페이지에도 비슷한 사진이 한 번 더 나와요.)

눈빛은 물론 책을 들고 지그시 내려다보는 표정에서 대상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보였습니다.

백자와 교감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껴안은 자세로 안을 바라보는 모습도 기억납니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

나에 대한 집중이 남에게로, 다시 그들에게서 나를 만난다는 것,

이 모든 과정에 '사랑'이 없으면 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지에 오를 수록 복잡함은 단순함으로, 단순함 안에 심오함이 깃든다고 하죠.


구본창 작가는 아직 제가 '감'으로만 인지하는 영역에 도달한,

보잘 것 없는 물체에 마저 생명의 기운이 어린 따스함을 건네 사진에 담는 사람입니다. 

 

 

 

 

'유명한 예술인의 이야기이니 읽자, 또는 잘 모르니 알기 위해 읽자.'라는 생각 대신

그저 한 예술가, 한 사람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책을 펼쳐보세요.

이러한 예술인의 에세이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내 자신이지 않을까요?

책을 읽는 우리 또한 책과, 예술가와 교감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임>

5. 기억에 남는 구절

 

사진과 예술을 넘어 삶에 울림을 주는 좋은 문장들이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개인적으로 사진가로서, 예술인으로서의 창작 방향을 밝힌 부분을 공유합니다.

 

'나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작가이고 한국 사진계에서의 내 사진과 역할에 대한 평가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져야겠지만, 적어도 내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진가로서의

 작업이란, 사라져 가는 일상의 순간순간을 잡아내어 기록하며 그 매순간의 공명을 담아내는 것이다. (p.13)


'사진은 지난 30여 년간 나를 매료시켜 온 표현 매체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다.

 평면이 아닌 입체, 소리나 빛과 같은 매체, 또는 그들의 복합적인 만남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무한한 표현 가능성을 끝까지 탐구하며 사진가의 숙명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 (p.161)'


'단지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스토리와 히스토리에 귀를 열어 두고 사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면서 작업을 지속하게 한 힘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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