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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 - 예술 중독자 ㅣ 현대 예술의 거장
메리 V. 디어본 지음, 최일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평점 :
"누구나 죽을 때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자신만이 읽을 수 있는 외로운 책을 갖게 된다. 자신만이 읽었고 읽을 수 있으며 단 한 번 낭독되었고 앞으로 결코 완독될 일이 없는 책이다."(김겨울, 『책의 말들』) 한 사람의 인생은 다른 누군가가 온전히 겪어낼 수 없으며 그 인생의 주인 또한 오직 한 번뿐이니, '외로운 책'을 써내려가는 각자는 고독한 여정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책, 그중에서도 전기라는 형식을 빌려 삶이 세대를 초월하여 지속되기를 열망한다. 그렇기에 전기를 읽는 일은 설렘과 동시에 상당한 마음가짐을 요한다. 이번에 20세기 현대 미술 컬렉터로 널리 알려진 페기 구겐하임의 일생을 통과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페기 구겐하임은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주어진 운명을 따르는 대신 예술 컬렉터의 길을 택한다. 페기는 직접 그림을 그리는 등의 예술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예술가들을 아낌없이 지원하면서 현대 미술을 빛내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야 하고, 예술은 인간적인 견지에서 관람되어야 하며 미술관에 갇혀 있는 유미주의적인 무언가여서는 안 된다"(p.400)는 원칙은 그가 펼쳐 온 모든 활동의 중심에 있었다. 안정적인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끝까지 고수하며 살아가는 열정적인 페기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 책은 페기에게 있었던 일들을 굉장히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지인들과의 복잡미묘했던 감정이나 편지로 나누었던 대화들, 게다가 여러 번의 결혼을 비롯한 화려한 사생활까지. 왠지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혹자는 페기를 향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자유분방한 인생 또한 삶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지 않나 싶다. 페기는 애정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었고 항상 그만큼의 애정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래서 외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언제나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반면 어딘가 쓸쓸해보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 컬렉터로서의 페기 구겐하임뿐만 아니라 페기라는 개인의 면모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전기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 사뮈엘 베케트나 막스 에른스트와 같이, 이미 저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이들도 무명 시절이 있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