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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
이시다 이라 지음, 이은정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평점 :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마흔 아저씨의 감성이 내게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나온 영롱한 표지를 보고는 반해버려서 서평을 신청해버렸다.(...) 표지가 예쁘긴 정말 예쁘다. 표지에서도 홀로 남겨진 중년 아저씨가 쓸쓸하게 달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쯤 되면 책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갔다. 우리네의 보편적인 아저씨들이 그러하듯, 청춘을 바쳐 열심히 일해 가족을 부양해왔지만 자식들은 그런 마음을 몰라주고 멋대로 제 인생을 살러 떠나버리고.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진부한 스토리와는 정반대의 책이었다. 오히려 매우 젊고 섬세한 신세대의 감각이 느껴지는 책이다.
주인공 아오다 고헤이는 자신과 아들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다. 그런 것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만년 1쇄 출판의 '안 팔리는' 10년차 소설가다. 사람들은 '작가'라는 직업에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그의 벌이는 일반 회사원과 다를 것이 없다. 사실 회사원보다 훨씬 나쁜 조건이다. 비정규직에 복지 혜택은 없고 정년이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갚아나가야 할 아파트 대출과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까지 있는데, 책이 팔릴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고헤이는 이런 현실적인 고민과 싸운다. 너무도 우리네 삶처럼 일반적인 갈등과 고민을 겪고 있어서 공감하는 한 편 읽는 내내 작은 웃음이 머금어 진다.
생각보다 마흔 아저씨는 훨씬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는 20대인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40살 아저씨가 그럴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그는 정말 소심하고 마음이 약하다. 같은 시기에 데뷔한 이소가이의 훌륭한 신작을 읽고 질투에 불타올라 며칠 동안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내 모습과 똑같았다. 참 인간적이다. 마흔이 되어도 똑같이 감정의 덫에 걸리고 자책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역경을 극복한다. 그렇게 인간은 계속해서 자란다. 매우 의외지만 그런 면에서 이 책도 분명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다른 성장소설과 달리 이 책의 차별성은 역시 주인공이 10대 20대와는 다른 원숙함을 가진 어른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압감 있고 너무 무거운 사람은 아니지만, 그만의 따뜻하고 사려깊은 원숙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와 아들 가케루를 대하는 자세, 장모와 편집자를 대하는 자세에서 은은하게 배어난다.
그렇다면 아버지로서 가케루를 칭찬해줘야 할 터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그 멋진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살아갈 힘의 근본 아닌가. 연애로 인해 힘든 인생이 얼마나 보상받는지 모른다. 사람은 하나의 사랑을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 그 정도로 사랑의 힘은 강하다.
- 287p
상황마다 발휘되는 작가로서의 통찰과 크고 작은 신념은 고헤이가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런 능력은 실제로 인생을 겪어내지 않으면 체득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는 둔해서 자신만 인식하지 못하는 인품을 남들에게는 언제나 인정받고 있는데(그는 자신이 항상 과대 평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또한 긴 세월을 착실히 살아내어 켜켜이 쌓아올린 결과물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던 것은 책이 평범한 인간이 평범한 고민과 사건들을 겪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스케일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헤이는 자신이 마주한 사건들 중 어떤 것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겪어낸다. 자신의 집필과 슬럼프도, 짧은 연애도, 아들의 학교 문제도,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살아낸다. 삶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련의 시련들을 충분히 헤메이는 과정에서 삶이란 저마다의 가치를 띄게 된다. 아무래도 나는 그런 사건들을 대하는 고헤이의 모습에서 그의 진국을 맛 보는게 즐거웠나보다. 칫치는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