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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커피 - 음악, 커피를 블렌딩하다
조희창 지음 / 살림 / 2018년 12월
평점 :

그러고 보니 내가 그날 저녁에 백 선생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젊었을 때 생각했던 쇼팽과 지금 생각하는 쇼팽이 많이
달라졌냐고. 그러자 백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응, 나이가 드니 안 보이던 게 보여. 이젠 쇼팽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아."
-89p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적당한 길이의 글 한편은 참 '읽기 좋다'고 느껴진다. 정말 향기로운 커피 한 잔 같은
글이다. <베토벤의 커피>가 그랬다. 특정 커피와 클래식 혹은 음악가를 정해 잡학 다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동네 카페에서 다양한 주제로 즐겁게 수다 떠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지루하거나 늘어지지도 않는다. 저자 조희창은 태생
이야기꾼이다. 그는 커피, 음악, 역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엮는다. 책을 읽다 보면, '커피와
클래식으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구나'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양산 통도사 앞에 있는 카페 '베토벤의
커피'에서 가볍고 즐거운 교양 수업을 듣는 것만 같다.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카페에 대한 저자만의 애정 어린 묘사가 가지 않아도 이미 그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 집의 아침은 고양이들의 수선스러움으로 시작한다. 아내가 먼저 일어나 고양이들의 밥을 챙기고 세탁기를 돌리기
시작하면, 나는 그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내린다. '오늘의 커피'를 갈아서 드리퍼에 털어 넣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동그랗게 돌려 부으면, 카페 안에 커피 향이 차오르면서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씩 맑아진다. 그러고 나서 커피잔에 코를 들이대고
입술을 적시면 그제야 잠은 달아나고 진짜 아침이 시작된다.
-26p
통도사 앞 평화로운 카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의 글에는 다양한 손님과의 만남의 새로움, 생활의 사소한
즐거움이 잔뜩 묻어난다. 그의 문장으로 시골 카페에서의 하루하루를 음미하는 그의 삶을 슬쩍 엿볼 수 있다. 시골에 내려와 카페를 운영하는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 커피와 클래식 음악이다. 저자는 너무도 다채롭고 끝없는 커피와 클래식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유영한다. 그리고 그
행복함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한 챕터의 마지막 장에는 항상 저자가 직접 고른 음반 두 장과 3개의 공연 영상이 있다. 나는 다음 챕터로 넘어갈
때, 마지막 장을 먼저 펼쳐서 영상 QR코드를 찍어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서 글을 읽었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커피와 음악 이야기를 읽다
보니 순식간에 책장이 넘겨진다. 책 뒤표지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적어놓은 "알지 못해도 음악은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알면 더 잘
들린다."라는 소개 글이 너무도 적절하다.
나는 클래식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고 커피에 대해서는 동네 카페의 메뉴밖에 모른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베토벤의 커피>는 커피와 클래식 입문을 도와주는 아주 적절한 책이었다. 좋은 친구와 가볍게 나누는 대화처럼 이 주제에 빠져들었다.
이 책 덕분에 예민해서 아무 음악이나 듣지 못하고 있는 내게 클래식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다가왔고, 커피전문점에서 하나씩 특정 원두를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일상의 여유를 더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듯해서 기쁘다. 주옥같은 음악과 뮤지션을 소개해주는 책에 기대어 조금씩 클래식에
발을 담가 보려 한다. 친절한 가이드북이자 따뜻한 안식처 같은 책 한 권이 생겨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