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남녀 - 나혁진평소에 로맨스와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훈남 탐정과 미녀 조수의 케미가 돋보이는 수사극이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탐정 강마로와 낙원회 살인사건의 2차 피해자인 유지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낙원아파트라는 곳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첫번째 사건의 피해자는 사망했지만 두번째 사건의 피해자인 유지혜는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로 상당한 충격을 받아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학원강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의 앞에 자칭 사립탐정 강마로가 돌연 나타나 낙원회 사건의 범인을 함께 잡자고 제안을 한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그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낙원아파트에는 낙원회라는 봉사단체가 있는데 피해자 두 명 모두 그 단체의 회원이었다. 때문에 낙원회의 모든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오른다.각 인물들을 모두 의심해가며 추리를 해나가는데 유지혜는 자신의 주민들을 모두 의심해나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만 사실 냉철하게 판단할 때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강마로는 유지혜 대신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사건에 임하는 역할을 해나간 것 같다. 탐정은 강마로였지만 사실상 문제 해결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유지혜였다. 강마로는 유지혜가 적극적으로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나면서 사건을 풀어나가도록 원동력을 제공해주는 역할 같았다. 그리고 극 중 서술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강마로는 사실 믿음직하다기 보다는 다소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있고 장난스럽게 임하는 부분이 있어서 종내에는 어쩌면 탐정이 유지혜고 조수가 강마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모든 인물들의 알리바이와 범행동기를 추측해가며 사건을 풀어가는데 그 와중에 같이 수사를 해 나가면서 서로 미묘한 감정을 가지게도 된다. 둘이 외모를 보고 서로 끌린 건지 함께 해나가며 정이 들어서 끌린 건지 둘 다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관계에서도 쏠쏠한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을 때 종종 나였다면, 하고 상상하는데 내가 유지혜였다면 강마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 같았다. 왜냐면 워낙 의심이 많아서 낯선 사람이 무턱대고 그렇게 접근하면 안 좋은 생각부터 들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지혜는 나와는 달랐고 그래서 이 이야기는 진행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야기는 초반 10페이지에서 끝났을 것이다ㅋㅋㅋ결론적으로 내가 예상한 범인과는 달랐지만 작가가 범인의 범행동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대단히 수고를 들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책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한 약도나 지도 같은 것을 제시해주기도 하는데 덕분에 지형상의 설명이라던가 사건의 묘사에 있어서 이해가 훨씬 잘 되었다. 작가는 하루하루의 시간적 순서도 한 챕터가 시작할 때마다 명시해 놓았다. 시간과 장소의 구성에 있어서 치밀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강마로는 셜록처럼 천재적이고 엄청난 추리력을 가진 인물은 아니지만 피해자를 위해 사건을 해결해주고 싶어하고 단순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탐정이다. 처음 내가 책을 읽기 전에 가진 인물에 대한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런 인간적인 탐정이 어쩌면 더욱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있을법한 인물들을 가지고 있을법한 이야기를 그려낸 있음직한 소설이었다.
책 읽는 여자는 힘이 세다고 한다.오랜 세월 동안 여자가 많이 아는 것은 좋은 게 아니었다. 여자는 조신하게 남편 만나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면 되는 것이지 글을 읽고 시를 쓰고 사군자를 치고 투표권을 행사할 권리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 마라톤을 뛸 수도 없었다. (뛰면 자궁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가 그 당시 남자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제지 당해왔다. 그것이 여성들에게는 불과 백 년 전까지도 적용되는 논리였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똑똑한 여자들은 마녀사냥을 당하고 히파티아처럼 맞아 죽기도 하고 허난설헌처럼 평생을 괴롭게 살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어디선가 본 듯했다.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많은 선비들과 유학자들이 반대한 이유. 백성들이 글을 알고 똑똑해지면 자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식은 그들의 특권이었다. 그것이 남성이든 권력자이든. 그래서 책을 읽는 여자는 힘이 센 것이다. 차이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조심스럽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되지만 치우쳤기에 차이와 차별이 발생한다. 나는 당연히 한 쪽의 입장을 가지고 있고 그렇다면 그 쪽에 더 치우쳐서 생각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편파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그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많은 사람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필히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시작부터 꽤 공감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 집은 딸 둘에 아들 하나인 집인데 어릴 때부터 남아선호사상을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은 분명히 존재함을 안다.꼭 남동생과의 차별이 아니더라도 맏이와 둘째간의 차별도 겪어봤다. 예를 들면 어릴 때 언니와 내가 옷장 서랍을 같이 쓰고 있었다. 위 아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내가 위 서랍을 하고 싶어서 한 건지 아닌지는 기억이 안난다. 어쨌든 내가 위, 언니가 아래 서랍을 쓰고 있었는데 외할머니가 맏이가 위의 서랍을 써야 한다고 해서 졸지에 나는 아래 서랍을 쓰게 되었다. 아래 서랍을 써서 서운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못해서 서운했다. 어린 나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물론 아들만 제사 지내러 다니고 하는 건 좋다. 가기 싫은데 굳이 안 가도 되니까.근데 친가에 가면 싫은 게 여자에게 집안일을 다 시킨다. 그러고서는 남자들은 절하고 밥먹고 땡이다.나는 그게 어릴 때부터 너무 싫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작은아빠가 나보고 행주를 쥐어주고는 상이라도 닦으라고 시킨다. 그럴 시간에 자기가 하면 되지 왜 굳이 나한테 시키는지 모르겠다.할머니는 알아주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손자들을 유독 예뻐했고 큰아들의 손녀, 손자는 더욱 아꼈다. 내 동생은 그 와중에 아들인데도 둘째 아들의 아들이라 그런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근데 또 작은아빠의 외동아들은 엄청 아낀다. 나름의 법칙이 있나보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할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집에서도 이어져 아빠는 집안일은 절대 안하고 엄마가 다한다. 그나마 언니랑 내가 좀 도와주고 동생은 시키면 하기라도 한다. 유학 경전 어디에 남자는 집안일 하면 안되고 여자만 집안일 해야 된다고 써놨는지 찾아보고 싶어진다.어쨌든 여자의 차별에 대해 공감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길어졌는데 그래서 나는 유교를 정말 싫어한다.조선을 망친 것도 거기에 있거니와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 뿌리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별 시답잖은 체면치레에 빠져서 이상이나 꿈꾸고 하니 현실에서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책 이야기를 해보자면 작가는 황진이를 좋아한다고 밝히는데 이유는 나와 다르지만 거기서 마음에 들었다.나는 드라마 황진이를 통해서 황진이라는 인물의 매력을 상상하고 좋아했던 것이지만 작가는 황진이의 역사적, 문화적 다양한 매력을 알아보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좋아한다는 건 같으니 괜히 동질감이 생겼다.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 인물들에 대해서 아는 인물들도 있고 또 읽은 책도 있었다.읽은 책이나 아는 인물들이 나오면 반가워서 열심히 읽다가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오면 살짝 김이 빠지기도 했다. 아는 척하고 싶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나와서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은근한 작가의 자랑도 느껴졌다. 책을 읽는 여성으로서, 지식인 여성으로서의 자랑이 곳곳에서 나는 느껴졌다. 나쁜 게 아니니 칭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잘나면 자랑하는 거지 뭐.작가가 소개하는 인물들 중 가장 이끌렸던 여성 인물은 박경리와 박완서다. 나는 사실 둘의 얼굴을 바꿔서 알고 있었다. 박경리는 요새 방영되는 알쓸신잡을 통해 더 알게 되었는데 방송에서도 소개된 토지라는 책을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양과 수십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야기로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박경리라는 사람에 대해 저자가 가진 생각들을 따라 읽으면서 나 또한 박경리를 존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직은 그 어마무시한 책을 읽을 엄두는 나지 않으니 수박 겉핥기 식으로 좋아하는 수밖에.박완서의 경우는 인상이 너무도 좋아서 그 사람이 쓰는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 필독서로 <나목>이라는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는데 너무 재미 없어서 대충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은 내가 그런 책에는 흥미를 못 느끼나보다. 나중에 세상을 더 겪고 나서, 아니면 굳이 그런 때가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운명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을 기다려본다. 유명한 책이라 꼭 읽어보고 싶은 게 아니라 나는 이 작가를 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끄덕여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여자들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나보다.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나도 사실은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아빠에 대해 부조리하다고 느낀 적이 셀 수 없이 많으며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 반항 정신이 커진다. 그런데 박경리도 그랬고 작가도 그랬다니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가보다.이 책의 말미에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진리다.양성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는 것이다.여성이어도 안에 남성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남성이어도 안에 여성성을 가질 수 있다.나는 감히 보편화해서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예전엔 몰랐지만, 혹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그런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아직도 암암리에 차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워졌다.어차피 모두가 두 개를 가지고 있으면 외양으로 차별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부정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소리가 될테니 말이다.요즘 내가 느끼는 건 국민성이 향상되어서 정치를 대할 때도 어떤 흑색선전, 네거티브에 속지 않고 자신이 이제껏 가진 소신에 따라, 그리고 모두가 인정하는 보편적 진리에 따라 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욱 발전되어서 사회 전반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차별(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에 대해서 다르게 사고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나또한 기꺼이 그렇게 할테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 프레드릭 배크만AND EVERY MORNING THE WAY HOME GETS LONGER AND LONGER+ 스포일러 약간 있을 유.개인적으로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의 팬이다. 데뷔작인 <오베라는 남자>부터 시작해서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와 <브릿마리 여기있다>까지 너무 감명 깊게 읽었다. 사실 작가의 모든 책을 읽으면서(이번 책 포함) 안 울었던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 작가의 책이 왜 그렇게 좋은가 하고 생각했더니 작가 특유의 인간애와 부드럽고 따뜻한 문체가 좋았다.가족 사이의 애정이나 이웃들간의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애정 등으로 사람 사이의 사랑을 주로 표현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이번에 신간이 나왔다는 사실에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서평단 활동 덕에 운 좋게도 정식 판매 되기 전에 받아서 읽어볼 수 있어서 너무 너무 좋았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제목 그대로이다.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할아버지와 그런 그가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 않는, 하늘도 다 담지 못할 만큼 사랑하는 손자 노아와 작별을 연습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할아버지는 손자 노아를 너무 좋아해서 노아노아라고 두 번 반복해서 부른다. 할아버지는 아들 테드보다 노아와 더 많이 닮았다.할아버지는 수학을 좋아하고 노아도 수학을 좋아하지만 테드는 문학을 좋아하고 기타를 좋아한다.그들이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길을 잃었을 때 수학만 안다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테드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노아에게 해주었다. 할아버지의 머릿 속에는 광장이 있고 한 세상이 있다.노아는 그곳을 갈 수 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할아버지가 길을 잃었을 때 쉽게 집을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의 존재이다. 할머니가 있어야 할아버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할머니는 작별 인사를 싫어했다. 할머니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할아버지는 몸보다 머리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할아버지는 노아에게 자신이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설명해주려고 노력한다. 작별을 잘 할 수 있도록 둘은 연습해나간다. 할아버지의 세상에는 벤치가 있는데 거기에 둘이 자주 앉아 있는다. 노아의 발이 땅에 닿을 때쯤 할아버지는 우주로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노아는 발이 땅에 닿을만큼 자라서 선생님이 되었고 할아버지는 우주로 떠났다. 노아의 딸은 노아보다 노아의 아빠를 닮았지만 노아는 좋은 아빠, 좋은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이 작가의 책 속 인물들의 대사를 보면서 나는 로맨틱하다고 느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도 그렇고 노아와의 대화에서도 그렇다. 로맨틱하다는 것이 남녀 사이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이야기 할 때도 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어른은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마음 속으로 꿈꾸고 바라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을 책 속 인물들이 보여주기 때문에 유독 끌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면 좋을지, 어떻게 늙어가면 좋을지를 알 수 있는 지침서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지금까지의 작가의 책 중 가장 짧은 단편적인 이야기이지만 긴 장편 못지 않은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이다.할아버지와 그를 너무나도 닮은 손자, 그래서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서로 하루하루 이별해가는 이야기 속에서 이별은 슬프지만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간다.책은 곳곳에 그림이 있고 한 페이지 안에서도 위 아래로 공백이 크게 있다. 그래서인지 약간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더 책은 부드럽게 다가오는 것 같다.요즘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그 프로그램의 내용 중에서 오늘 이 책을 읽고 난 후 서평을 쓰는 동안 생각난 말이 있다. 어떤 책이 좋은 데에 이유는 크게 없는 것 같다. 그냥 내 마음 속에서 울림이 있었기 때문에 좋았던 것이다. 그게 어떤 부분인지 설명해보려고 했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언젠가 이 작가의 책이 왜 좋은지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면 나도 아마 우주로 떠날 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