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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수비수들 ㅣ 문학동네 시인선 223
여성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이별에 대한 아픔을 말하는 작품이야 많지만 이별을 수호한다니?! 재밌잖아?? 싶은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첫 시집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데, 이번 시집은 내가 시인에게 갖고 있던 인상보다 훨씬 부드러운 언어로 쓰인 것 같다.
무엇보다 '이별의 수비수들'이란 제목이 곱씹을수록 잘 지었다. 카드뉴스에 “인류의 구십 퍼센트는 이별한 사람입니다 십 퍼센트는 이별할 사람이구요”라는 시구가 발췌되어 있는 걸 봤다. 그러고 보니 평생 한 번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도 이별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이란 행위 자체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이지만, 그럼에도 개개인의 이별은 아주 사적이고 고유한 경험이라는 사실 또한 시적 포인트...!
문장을 쓰는 방식이 독특해서 조금 어려운 감이 있지만, 지칠 때쯤 강렬한 한방을 주는 시구가 등장한다. 여성민 시인의 리듬에 익숙해진 후에는 이미지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며 읽으니 한결 수월했다.
그리고 사실은 이렇습니다 인류의 구십 퍼센트는 이별한 사람입니다 십 퍼센트는 이별할 사람이구요 이별한 인류와 접촉해 이별하는 문명을 받아들인 사람이 서고에서 책을 분류하고 식빵을 굽고 식자공으로 취업하고 설교하고 갓 볶은 원두를 내려서
세상은 아직 선선하고
우리가 불에 탄 채로 거리를 달리며 긴 장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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