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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의 창백 ㅣ 문학동네 시인선 221
신미나(싱고)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9월
평점 :
지난 시집 두 권을 좋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차기작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대보다 훨씬훨씬 좋았다. 신미나 시인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작품활동을 해나가실 테지만, 아마 당분간 시인의 대표작이자 역작으로 기억될 시집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ㅎㅎ!
시툰 같은 것들을 종종 그리시고, 직접 그린 삽화가 들어간 책도 내셔서 그런지 시인에게 뭔가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는데, 시집은 의외로 서늘하고 날카롭다. '본캐'와 '부캐'가 확연히 다르다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론 본업 모먼트가 제일 멋지고 매력적이신 듯!
이번 시집은 전통 서정시의 토속적인(?) 느낌과 오컬트적이고 기기묘묘한 느낌이 공존하는데, 책 소개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낯선 종'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재밌었다. 영상화된다면 그 무엇보다 파격적인 크리처물이 될 것...나는 '힙'하다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인간이긴 하지만 이럴 글을 읽을 때면 '아 이게진짜 텍스트 힙이지' 하고 느끼게 됨ㅋㅋ!
신종 크리처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것도 좋았다. 이 시집에서 죽음이 자주 묘사되는데, 그 방식이 지나치게 어둡거나 무겁지 않게 다가왔다. 오히려 시인이 그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버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에 <룸 넥스트 도어>라는 영화를 흥미롭게 봤는데 왜인지 이 시집이 떠오르기도 했다. 죽음은 어떤 존재에게든 평등하게 찾아온다는 점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무엇 같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로 넘어가는 요즘 다시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맞춤한 시집인 듯하여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그는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어 물에 넣는다 순식간에 눈사람이 사라지는 모양을 본다 기분이 아니라 감정이 아니라 어떤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을 - P71
겉과 속이 같다는 건 천국의 마음입니까? 지옥에 가까운 믿음입니까? 믿고 싶은 대로 사람들은 저마다 신을 빚었습니다
성자는 사람들을 피해 동굴로 들어가버렸고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신을 인정받고 싶어서 다시 성자를 찾았습니다 - P82
손톱만한 아가들이 통통한 엉덩이를 내놓고 손잡고 발 구르며 동동 춤춘다
맨발에 그림자가 붙지 않으니 어쩌면 저들은 귀여운 귀신인지도 몰라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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