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맛 - 2017년 18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강영숙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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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상 문학상 작품집만큼은 쫓아 읽어왔는데, 어쩌다보니 최근들어서는 다양한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접하고 있다. 특히 문학동네의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애정하는 작품집이 되었다. 그리고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처음 읽게 되었는데, 이미 18회째라고 한다. 단편 수상집은 선택의 고민없이도 다양한 우리 시대의 우수 작가들과 우리 시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참 좋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전반적으로 이 나라에 산다는, 이 시대에 산다는 아픔, 나아가 그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다양한 통증들을 담고 있다고 느껴졌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서로 스쳐지나가지만 한사람 한사람을 들여다보면 상처나 흉터 하나쯤 없는 사람이 없은텐데... 나름의 전략으로 그것들을 치유하거나 보듬고 살아갈텐데... 그 모습들을 잠시 멈춰서 들여다보게 해주는 이야기들이었다. 공감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런 삶도 있다고 소설들은 조용히 들려준다.

대상작이자 표제작인 <어른의 맛>은 승신이라는 여자가 유부남과 몰래 만남을 갖는 장면과 옛 친구를 만나러 가는 장면. 이렇게 두 개의 이야기가 맞붙어있다. 승신이 등장한다는 것을 빼면 두 이야기는 전혀 이어져있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독특했다. 두 사건의 연결점을 굳이 찾자면 하나는 미세먼지, 다른 하나는 조류독감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사건의 흐름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폭력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작가는 "인간관계라는 게 바이러스나 먼지, 황사에 의해 깨지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간도 인간의 의식도 의지도 관계도 실은 물질성 안에 갇혀 지배를 받는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승신은 애들이 살면 살수록 더 비판적으로 변할 거란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삶이 사람들을 더 비판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떤 걸 배우면 우리는 어른이 되는걸까? 이처럼 삶에 대해 점점 비판적으로 되면, 더이상 할 수 없을만큼 비판적이 되면 우리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어른의 맛을 알게 되는 걸까? 작가는 '어른이 되어도 악몽과 불안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고 말한다. 아이든, 어른의 맛을 알게된 어른이든 살아가는 일은 힘겨운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되어도 불쑥불쑥 삶 속으로 뻗쳐들어오는 불안한 존재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이 소설 속 인물들처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또한 끊임없이 노출되고 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설 속 승신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움큼 흙을 집어먹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무언가를 애착 담요처럼 질질 끌고다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른이 되는 일, 어른으로 살아가는 일,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일의 강박에 대해 생각케하는 소설이었다.

김금희 작가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출판과 책이 소재로 등장해서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젊은 날의 꿈이 조금씩 낡아져가고, 불태워지는 책더미와 함께 영원히 상실되어버리는 모습이 씁쓸했다. 그네들은 또 그렇게 한걸음 어른이 되는걸까.

마치 동면을 지속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던 시절은 다 잊은 봄날의 곰들처럼, 아니면 우리가 완전히 차지할 수 있는 것이란 오직 상실뿐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아버린 세상의 흔한 아이들처럼.

조경란 작가의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는 무엇보다 까마귀의 등장이인상적이었다. 종종 그 많은 새들은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죽을까, 그리고 그 많은 죽은 새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보곤 하는데 이 소설에서 특별히 까마귀가 죽는 순간을 보는 장면의 묘사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가깝지만 아주 높은 곳에 있던 새카만 새. 하나의 분명한 형상이었던 그것이 하강하던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앗다. 그러나 까마귀가 떨어진다. 라고 알아채던 순간 나를 긋고 지나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최근,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글들을 읽는 일은 한없이 긴 시간 속에서 마침 이 찰나와도 같은 순간을 나와 나란히 공유하고 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일과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작가들은 각자 자신만의 사유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글을 읽는 나와 가느다란 공감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래서 그들의 사유가 내 공간으로 조금씩 스며들어오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곤 한다. 고전을 읽는 즐거움, 세계 유명 작가들의 독특한 문학을 엿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현대의 한국문학을 읽는 일 또한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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