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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ㅣ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영국의 소설가, 극작가, 다큐멘터리 작가이며 미술평론가이기도 한 존 버거, 이렇게 길게 쓸 수밖에 없는건 그가 그 어떤 분야에서도 부족함이나 소홀함이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존 버거가 쓴 글과 장 모르가 찍은 사진들을 엮어 유럽 이민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글과 사진은 서로 충돌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협력하지도 않으면서 각기 독립적으로 주제를 전달하는데 기여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70년대의 유럽 이야기이지만 그 시대의 이야기,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읽어넘길 수 없는 극력한 현재성을 보여준다. 낡은 이야기같지만 결코 낡지않은 이야기, 낯선 곳의 이야기같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미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개발국가와 저개발국가 간의 문제 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더욱 곪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쿠바인들은) 저개발하다 (to underdevelop)는 타동사가 하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경제가 저개발된 것은 그 나라 주변에서, 내부에서, 그나라를 향해서 행해지는 일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개발을 하는 대리인들이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터키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나무를 베고, 양을 키우는 목가적인 풍경? 그런건 어쩌면 들뜬 관광객의 눈으로 보는 '여행지'에서나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그건 가난의 살풍경이다. 적어도 존 버거의 눈에는 그랬다. 이 저개발 경제에 갇힌 한 남자는 이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할 결심을 한다.
그들에게 도시는 끊임없이 스며든다. 이야기 속에서, 공산품들과 언론, 음악을 통해서 도시가 한결같이 약속하는 것은 '개방성'이다. "그 개방성 안에 기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러한 믿음이 "모든 의미에서 진실과는 아득히" 멀다는 것을.
그를 이민을 떠나도록 강요한 것은 빈곤 하나만은 아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그는 애초에 자기가 태어났던 환경 속에는 결여되어 있는 역동성을 회복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제 그는 거의 상품이 유통되듯한 과정, 즉 하자없는 노동력을 증명하는 엄격한 신체검사와 이주의 과정을 거쳐 대도시로 향한다.
구체적인 한 사람에게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가, 세계 경제하는 괴물이 어떻게 숨쉬는지를 보여준다.
1부 출발이 끝나고 2부 일이 시작된다.
"...착취의 가장 적나라한 형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은 지구 반대쪽 끝의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구 반대쪽'이라는 개념은 지리학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해당된다. '파리시 교외의 판자촌' 같은 것은 거기에 속한다. 지하실에 파뭋혀서 잠자고 있는 이민들도 거기에 속한다. 그들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노동시간과 비번시간만을 가지며, 거의 일정한 장소에서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 종사한다.
"마르크스(1867년): ..공장 노동은 신경조직을 극도로 소모시키며, 근육의 다각적인 작용을 없애 버리고, 신체적 활동과 지적 활동의 양쪽 모두에 있어서 자유의 모든 인자를 몰수해 버린다.
헨리 포드(1922년): 나는 반복적인 노동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을 해친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의료 기술자들에게서 반복적인 노동이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파괴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우리들이 조사한 결과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왜 여기 오는 거죠? 돈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돈을 국외로 송금하잖아요. 그러니까 물가가 올라가는 거예요.
한 이민노동자의 말 : 당신들이 우리와 똑같은 돈을 벌고 싶다면, 우리와 똑같은 일을 하기만 하면 될 거요."
또한 이민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말살되는 경험일 것이다. 그 존엄성은 타인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스스로의 현재를 부정함으로써 (단지 미래의 희망만으로 현재를 견디는 삶을 택하으로써) 스스로 박탈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대개의 이민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착취를 정치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생각은 전통적이다. 그들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인간주의가 한데 함쳐져 개인과 가족을 위해 뭔가 이룩하고자 하는 희망이 된 것이다.
(중략)
터널 안에서 일하면서 각자는 달라진 ㅁ래에 대한 개인적인 환상 속에 다소간 갇혀 있다. 이것이 언어로 인한 고립감을 더욱 증가시킨다. 이것이 가끔씩은 일종의 무관심 - 지금 현재와 자아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하기도 한다.
마지막 3부 귀향,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즉각 온전한 그 자신으로 돌아온다.
"그가 옷가방과 짐꾸러미를 들고 기차에 오를 때, 그로부터 빼앗겨있던 모든 것이 그에게 돌아오게 된다. 독립, 남자의 성, 개인 주소, 목소리, 사랑할 기분, 나이 먹을 권리. 아무도 그런 것들을 호주머니에서 압수당했던 물건들을 돌려 주듯이 돌려 주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그의 운명에 의해서 그에게 돌려 주어진다."
이제 그는 돌아온 이민, 성공한 이민, 무언가을 성취한 사람으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어쩌면 그가 있을 확실한 자리는 더 이상 그의 마을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는 진짜 고향을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 마을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는 두 번 다시 그것을 자기가 떠나기 전의 것처럼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전과 다르게 보이고, 그도 전과 다르게 본다.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이 책에 대해 "저개발국가 노동력의 제 1 세계로의 유입이라는 세계적 현상을 다큐멘트와 시적 묘사와 분석적 산문을 통해 다룬 존 버거의 독특한 기술방식은 배울 점이 많다."고 쓰고있다. 확실히 이 책은 매우 특별하고 새로운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용을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제시하면서도 차갑지 않고, 오히려 뇌와 가슴까지를 뜨겁게 데워주는 글들만으로도 정말 멋진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다른 책, 아마도 소설을 머잖아 한 권쯤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