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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ㅣ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평점 :
만약 당신이 어느날 전철 안에서 펭귄을 본다면? 아마도 인증샷부터 찍으려 들거나 혹은 내가 제정신인지 확인해보거나, 아니면 소설 속 교코처럼 허둥대다가 물건을 놓고 내리거나... 책장이 채 석장도 넘어가기 전에 제목 속의 모든 것들, 즉 펭귄과 철도와 분실물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각 장마다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마치 철도(우리로 말하자면 전철)이 중간중간 환승역에서 만나듯이 아주 살짝 겹쳐 지나기도 한다.
1장에서 혼자 사는 교코는 일년째 품고 다니던 고양이의 유골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진정한 애도의 마음으로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자신의 마음도 돌이켜보게 된다. 2장의 중심인물은 히키코모리인 후쿠모리 겐이다.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 2년여만에 외출(모험)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부적처럼 지녔던 어린 시절의 러브레터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과정에서 세상 밖에도 자신의 자리가 있음을 깨닫고,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되찾는다.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3장 속의 지에는 모든 삶의 과정이 떠밀려온 듯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선택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끊임없이 핑계를 만들고, 대충대충 둘러대며 살았던 게으른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진짜 어른이 되기위해 이력서를 쓴다. 4장은 자수성가한 성실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았지만 아들과 끝내 화해하지 못한 준페이가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소중한 무언가를 찾게되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이 분실물 센터가 찾아주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이다.
철도를 타고 혼자서도 잘 다니는 펭귄, 비현실적일만큼 상냥한 빨간머리 분실물센터 역무원만으로도 뭔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침 뚝 떼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고있으면 세상 어딘가에 그런 곳이 있었으면, 귀여운 펭귄과 빨간머리 역무원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진심어린 마음이 솔솔 솟아난다. 그 곳에 가면 내가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무언가, 소중했지만 잊어버리고만 어떤 기억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전반적으로 각각의 이야기들은 살짝 가볍고, 어찌보면 조금 진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결국 이 세상에 시시한 이야기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시한 인생이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맥빠질만큼 시시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낸 날, 이렇듯 낯간지럽고 따뜻한 책을 읽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또 누군가에게는꼭 필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