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넘어 인문학 - 미운 오리 새끼도 행복한 어른을 꿈꾼다
조정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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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을 배경으로 세 명의 소녀가 그려진 표지만 보면 뭔가 달콤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는 '동화'라는 단어가 단순한 환상과 행복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이 책 또한 그저 달콤한 동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 처럼 그 '넘어'에 있는 인문학과 만만치않은 진짜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실려있는 책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에 또르르 눈물을 흘리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 소녀가 살아내야 했던 세상에 분노할 수 있는 동화읽기가 담긴 책이다.

동화 한 권 마다에 담긴 내 마음 혹은 세상을 풀어내고, 이어서 그와 관련해 조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성인용 소설 혹은 인문학 도서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환상과 꿈과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부조리함과 추함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이야기인 동화. 요즈음 많은 작가들이 동화 비틀어 쓰기를 하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틀을 가져오지 않고도 전통 동화의 틀만으로도 충분히 하고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들이 만들어진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뀐 것처럼 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 바뀌었지만, 사람의 감정을 지배하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이솝 우화 <당나귀와 아버지와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사람들의 '말(言)'에 휘둘려 최악의 결과에 이르는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이솝우화 뒤쪽에는 대충 이런 문제가 붙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주변의 온갖 말들에 흔들리지 마라. 아마도 가장 표면적인 교훈일텐데, 왠지 <미움받을 용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남의 일에 말을 보태지 마라. 이런 교훈도 생각해 볼 수 있을테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결국 불가능하다, 라는 문장도 떠오른다. 이 이야기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을 맺고 있다.

"결국 실패한 그 아버지와 아들을 다시 생각합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오만하게 자신의 길이 전부라고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옹호하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는, 남들에게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는 실수와 행동을 통해 삶에 대해 배워 가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33쪽)

"우리는 각자 누군가의 대나무 숲이 되어 주어야 한다"(65쪽)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는 참 따뜻하게 읽혔다. 도시화되고 모두가 자신만의 방에 틀어박히면서 대나무 숲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소소해보이는 사연과 이야기를 라디오를 통해 들으며 때로는 피식 웃어버리지만,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의 대나무 숲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오는 것들'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전래동화 <은혜갚은 까치>이야기는 꼭 1대1로 교환되는 것은 아니어도 선한 행동이 결국은 돌고돌아 돌아온다는 오래된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는 쓰고 있다. 그리고 이 동화 뒤에는 신영복의 <더불어 숲>이라는 책을 붙여두었다. 그 책을 읽으며 신영복 선생님의 생각에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리고 화엄경의 한 구절도 함께 소개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었다.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ㅎ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한다." (84쪽)

피터팬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속 초인을 연결지어 놓은 것은 새롭고 흥미로웠고, 여러 공주 이야기를 비판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풀어놓은 것들은 익숙하면서도 보다 다채롭게 바라볼만한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헌된 권위와 우리를 착취하는 속임수에 위해 노예로 전락하고 있지 않나 의심이 들 때, 한번쯤 네버랜드 쪽을 쳐다볼 필요는 있습니다. 네버랜드가 너무 즐겁고 시끌벅적해서 목적을 잊어버릴 것 같다거나, 알록달록한 그림이 가득한 책을 들고 있는 것이 민망하다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도 좋습니다."(151쪽)

물질적 풍요가 곧 행복이라고 가르치는 동화들, 여자에게 있어 아름다움이 궁극의 善이라고 가르치는 동화들, 뚝 잘라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인생사의 복잡함을 모호하게 숨겨버리는 동화들. 어쩌면 전래동화는 아이들에게 위험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더구나 디즈니 에니메이션은 여러모로 한 술 더 뜬다는 느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동화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운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배우고, 두렵지만 나아가는 힘에 대해 배우고,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배우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 다시 동화를 읽으며 섬뜩해하기도 하고, 뭔가 뜻모를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무심히 넘겼던 페이지에서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연히 집어든 책을 넘기며 동화 넘어의 인문학을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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