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여자
가쓰라 노조미 지음, 김효진 옮김 / 북펌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는 소설이다. 일단 '재미'는 보장된 셈이고, 구성도 허술하지는 않을테고, 적어도 여주인공은 매력적이지 않겠어? 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싫은 여자>라는 제목과 '남자들은 정신없이 숭배하고 여자들은 못마땅해 하는 그녀'라는 카피에서 처음 떠올린 것은 영화 <말레나>였다. 이 소설 속 그녀는 어떤 모습 속에 어떤 사연을 감추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 소설은 싫은 여자 '고타니 나쓰코'와 그냥 여자 '이시다 데쓰코'라는 두 여자의 20대에서 70대까지의 인생여정을 그린다. 늘 사건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나쓰코는 몇 년에 한 번씩 변호사인 데쓰코를 찾아 문제 해결을 의뢰한다.

"나쓰코이니까.
무슨 일이든 있을 수 있다. 그런 여자다."(89쪽)

세월이 흐르고, 사건의 스타일도 조금씩 바뀌지만 나쓰코의 결코 변하지 않는 부분, 탐욕스럽고 교활하고 푼돈에 연연하는 모습은 그대로이다. 그런게 너무 싫으면서도 데쓰코는 나쓰코의 그런 모습을 은근히 기대한다. 얄밉지만 조금 어설프고, 잠시나마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나쓰코니까 말이다. 늘 주변의 환경과 상황을 수용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켜버리는 데쓰코로서는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대로, 하고싶은 대로, 한마디로 어린아이처럼 행동해버리는 나쓰코가 밉상이지만 한편으론 부럽기도 한 것이다.  어이없는 사건을 일으키거나, 휘말리거나 하는 나쓰코를 보며 결국은 '그래야 나쓰코지'라고 납득해버리는 것이다.

"나쓰코의 말은 믿을 수 없다. 오래 보면 볼수록 더욱 그렇다. 나쓰코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 분명한 사실이다. 나쓰코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하다.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일"(306쪽)

나쓰코의 매력은 예쁘지만 완벽한 정도까지는 아닌 얼굴과 각선미, 세부적인 사항은 제대로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그럴듯하게 말하며 상대를 격려하고 행복하다는 혹은 잘될거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나름의 대화법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자들은 너무 예쁘면 오히려 거리감을 느낀다나 어쩐다나... 너무 똑똑하면 오히려 부담감을 느낀다나 어쩐다나...

나쓰코의 뒤치닥거리를 하며 초보 변호사에서 노련한 변호사로 조금씩 성장해가는 데쓰코의 이야기는 나쓰코의 이야기와 더불어 또하나의 큰 축을 이룬다. 노련한 직업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한편으론 한 인간으로서도 성장해간다. 타인에게 습관적으로 담을 쌓고, 공허감에 시달리던 그녀였지만 한걸음씩 타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배워간다. 물론 자신만의 정체성을 무너뜨리진 않기에, 꿋꿋하고 성실하게 허영심없이 변호사 일을 해나가는 그녀를 젊은 신임 변호사는 '무사'라고 부른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오기와라라는 선배 변호사가 있다. 그는 "처음 보는 변호사한테 마음을 여는 사람은 없어요. 계속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차츰 마음을 열고 속내를 보여주죠."(38쪽)라고 말해준다. 모든 인간 관계가 당연히도 이렇지 않을까? 새로이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건 그저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먼저 다가가며 살금살금 거리를 좁혀가야 하는 거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데쓰코에게 많이 감정이입을 해가며 읽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문구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설 속에서 몰스킨 수첩, 분홍색 다색볼펜, 고쿠요의 캠퍼스 노트 등등 그녀가 사용하는 문구들마다 구체적으로 언급해주는 부분에 덩달아 신이 났다. 여전히 문구점만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내 모습이 때론 한심했는데, 무려 변호사도 이런 취향이란게 왜이리 흐믓한지...

고약하지만 마법처럼 즐거운 꿈을 심어주는 싫은 여자 나쓰코, 하지만 결코 미워할수만은 없는 여자 나쓰코의 흥미진진한 모험담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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