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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문장이 내 마음에 드는 한국 소설을 읽으면, 아무리 잘 쓰여진 외국소설이어도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뭔가를 느낄 수 있다.
스르륵 빠져들게 만들고, 즉각 공범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힘' 같은 것이 있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이 소설에서 나는 한 페이지를 채 다 읽기도 전에 그 '힘'을 느꼈다. 즐거운 읽기의 결정적인 예감과도 같은...
지난번, 그녀의 소설 <백의 그림자>를 읽었을 때,
표지만큼이나 문장을 참 깨끗하게도 쓰는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런 느낌도 여전했다. 여전해 깨끗한 표지, 한겨울 나무처럼 앙상하지만 열심히 물을 나르며 살아있는 문장, '열에 아홉은'이라는 표현을 '아홉에 여덟은'이라고 쓰는 수줍은 위트 같은 것도.
홍수 때 낚시를 한 물고기를 먹고, 아니 사람들의 원한을 먹고 죽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공장 노동자였다가 기계에 먹혀 죽은 아버지, 부드럽고 달콤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세계의 원한과 고통을 말하는 어머니...
이렇듯 누구라도 마음이 찌릿하고 바싹 타들어갈 이야기도 소라, 나나, 나기의 입을 빌리면 깔끔하고 담담하게 들린다.
'난리법석을 떨며 살다가도 어느 순간 영문도 모르고 비참하게 죽기나 하는'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계속해나가고 있는 소라, 나나, 나기의 이야기를 작가 황정은은 담백한 시처럼 적어내려간다.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하지만 동생 나나는 아무래도 임신을 한 것 같다. 엄마인 애자는 지금 요양원에 있다.
중간에 어린 시절 두 자매는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소꿉놀이를 한다.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단정하게 적어 신중하게 벽에 붙이고, 춧불을 켜두고. 갑자기 나의 어린시절 피난 놀이가 생각났다. 너무나 오래 전이어서 추억이라기보다 전설처럼 느껴지는 시절이다. 아이들은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어릴수록 창의적이라고 우리들은 쉽게 말하지만... 어쩌면 아이들만큼 자신들이 갇힌 세계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존재들이 또 있을까? 그런 세상을 배웠고, 그런 세상을 들었으면, 그런 세상의 하늘만큼만 생각할 수 있는거겠지. 가련한 상상력이다.
나나의 이런 생각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소라는 교활해. 소라는 연약해. 연약하다니, 교활해." 스물을 갓 넘긴 어린 나나. 다른 이에게 연약하게 보이는 것이 교활한 생존전략이라는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나나가 짠하다.
이 소설은 이렇듯 내내 메마른 감성을 적실듯 찔끔거리다가 결국 다시 말라붙게 만들어버리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옆방에 살며 애자 대신 소라와 나나를 '보잘 것 없지는 않도록' 길러낸 순자, 순자의 아들 나기는 섬세하고 단정하고, 한편으론 강하고, 그래서 슬프다.
나기의 부분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런거다. 잠시 일본에서 생활했던 나기에게 나나가 자꾸만 묻는다. 가장 아름다웠던 건 뭐냐고. "아무튼 이상한 장소에 이상한 방식으로 그는 혼자서 드럼을 두드리고 있었지. 그런데 그게 아름다웠지.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했지. 무섭다고 여겼던 것도 같은 광경. 몹시 격렬하게 두드리고 있는데도 들리지는 않던 그의 드럼. 아무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그 기묘한 발광." 도쿄라는 장소, 아니 대도시가 가진 아름다움과 공포를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는걸까...?
세명의 화자가 이어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시간은 계속 진행방향이다.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은 그들의 사연만큼이나 사정을 봐주는 일 따위 없다.
마지막으로 나나의 이야기다.
언젠가 멸종. 하지만 세계는 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으므로, 공룡이 멸종하는데 천만년이 걸렸다면 "천만년이면 나나가 십만명", 이제 그녀는 덧없고 하찮지만 인간을 사랑한다. 무의미하지만 소중하므로.
그래서 "계속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