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러더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캐빈에 대하여>라는 소설로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또다른 소설, <빅 브러더>를 읽었다. 조지 오웰의 Big Brother가 아니지만, '먹기위해 사는가?' '살기위해 먹는가?'라는 오래된 명제 이후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했고 오히려 한층 교묘하게 우리의 삶과 선택과 사고를 속박하는 '음식'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인 만큼 <1984> 못지않게 섬뜩한 소설이었다.

"만일에 대비하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은, 즉 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장 안전하고 내밀한 은닉처에 도토리를 묻어 두는 행위는 나름대로 분별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진화론적으로 영악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조국을 죽이고 있다."

집 지하실에서 수제 가구를 만드는 자영업자,  남편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꼭두새벽에 기상하는 것은 과시용'이다. 엄격한 식이요법을 실천하고 규칙적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그는 '어깨가 넓고 허리가 가는 역삼각형 몸매로 바뀌면서 좀 더 엄격하고 비판적인 인상이 강해졌고, 그 때문에 나는 그가 옆에 있기만 해도 핀잔을 듣는 기분'이 든다. 나는 '누구에게든 조금도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되는게 평생의 목표'지만  TV 스타의 딸로 자랐고, 지금은 잡지나 신문에 종종 실리는 꽤나 성공한 사업체를 꾸리고 있다. 여전히 주목을 받으면 움찍하는 나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지 못해 안달인 오빠가 어느날 내 집에 왔다. 아주 거대한 몸집이 되어서.


'불가해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오빠는 이후 두 달간 집에 머문다. 오빠와 처음 마주친 '남편은 예의 없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가스레인지에서 고개를 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입을 다무는 것도 잊었다.'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무례하게 느껴진 힘든 첫날 저녁을 보내고 남편은 물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나는 그의 질문을 허공에 달아 두었다. 남편이 비판하는 대신 연민을 보여 주는 것이 고마웠다.


이 후로 집은, 특히 부엌은 혼돈의 공간이 되어간다. 남편은 더 집요하게 식이제한을 하고, 오빠는 뭐든 무지막지하게 먹어댄다. '확대 해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모든게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본을 무지막지하게 먹는 것과 엄마의 죽음을 자살로 해석하는 것. 그는 극적인 삶을 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그런 커다란 사고방식이 몸집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의 불어난 몸이 그가 겪고 있는 어떤 문제의 증상이라면 그것 역시 허영을 상징했다.'


"오빠가 내 앞에서 기름진 음식이나 단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나는 초조해졌다. 마치 그가 내 눈앞에서 면도칼로 손목을 긋는 것 같았다."


당연히도 나는 남편과 오빠의 팽팽한 대립 사이에 끼어버렸다. '그 무렵 나는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대놓고 말하면 나는 계숙해서 모두에게 부정직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고, 소설의 중반부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반전을 가져오지만 마지막 반전을 위한 장치로서의 반전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 '비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겹겹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서 다양한 주제에 초점을 맞춰 읽어볼 수 있는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점차 비혼자가 많아지는 요즈음 새롭게 대두되는 '형제 리스크', 쉽게 중독되는 성향의 기저에 대한 생각들, 이미 뭔가를 가진 자가 그것을 욕망하는 상대 앞에서 겸손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책임을 다하는 삶과 최선을 다하는 삶과 그럼에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 등등. 그냥 가상의 이야기이면서 한편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작가의 또다른 소설 <내 아내에 대하여 So Much for That>도 조만간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